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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기, 여행기/해외여행

북유럽+발트 3국 여행기 10-리투아니아 빌뉴스

by 뭇새 2023. 12. 14.

북유럽+발트 3국 여행 10-리투아니아 빌뉴스
 
 2023. 6. 22. 금 어느 새 10박 12일의 여정 중 마지막 일박이 남은 날이 밝았다. 시작이 반이라더니 반을 느낄 새 없이 흘러가 버렸다. 시차에 익숙해졌는가 싶으면 다시 돌아가는 것이 여행이다. 삶도 그러하다면 내가 어디만큼 와 있는 것인지 돌아보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이 여행처럼 남은 시간이 지나온 시간보다 짧으리라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진리이다. 단지 여행과 달리 얼마나 남은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을 뿐이다. 그러니 날마다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가는 결단과 현명함이 필요하다.
아침 조식을 먹고난 뒤 출발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숙소 근처를 산책하였다. 주변이 도로라 차들이 제법 시끄럽게 지나간다. 낯선 꽃들도 보이고 컴프리 같은 낯익은 꽃들도 보인다. 오늘도 낮에는 제법 더울 듯한 날씨다.

숙소그린호텔
컴프리

원래 일정은 오전에 트라카이로 가서 유람선을 타고 갈베 호수와 트라카이성을 둘러보고, 점심을 먹은 후 구시가지를 관광한 다음 저녁은 자유식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비 온다는 예보가 있어 오전에 빌뉴스 구시가지 관광을 먼저 하게 되었다.
빌뉴스의 현지 가이드는 나이가 제법 든 중년이었다. 대구가 고향이라는 그는 묻기도 전에 자신의 내력을 공개했다. 군대 가서 요리를 배워 제대했는데 IMF가 터졌고, 취업이 어려웠는데 마침 광고를 보고 이곳으로 왔다고 하였다. 이곳 여자를 만나 결혼하여 아이를 하나 두고, 지금은 자기 가게를 운영하면서 때때로 관광가이드를 한다고 한다. 우리 팀의 인솔자가 어제 어린 유학생 가이드에게 ‘연애하지 마, 연애하면 집에 못 돌아간다’라고 하더니...기본적으로 한국 남자들이 가정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어서 이곳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게다가 이곳에는 눈에 띄는 미인들이 많다.
 
리투아니아는 면적이 한반도의 1/3에 해당하는 65,300㎦에, 인구도 280만 명밖에 안 되지만 발트 3국 중 가장 인구가 많고 국토 면적도 넓은 나라다. 인구구성 비율을 보면 리투아니아인이 80% 이상이고, 그외 폴란드인, 러시아인이며, 종교는 가톨릭이 약 80%, 나머지는 러시아 정교, 개신교 순이다. 1989년 프랑스지리원에서는 리투아니아 빌뉴스가 유럽의 지리적 중심이라고 발표했다. 리투아니아는 슬라브계와 게르만계가 충돌하는 접점에 위치하고 있어 이곳을 차지하기 위한 충돌이 끊이지 않으니 그 역사의 고단함이 짐작된다.

빌뉴스, 전에는 빌리우스라 불린 이곳 구시가지는 13세기~18세기 말까지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정치적 중심지였고, 199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여행의 막바지가 되면 본 것도, 들은 것도, 들른 곳도 많아 여러 가지가 섞여 버리고, 단체여행의 성격상 주마간산격으로 다니다보니 발트 3국 다른 나라의 구시가지와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빌뉴스는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뉘는데 구시가지로 들어가려면 ‘새벽의 문’을 지나야 한다. 16세기에 도시를 보호하기 쌓은 성벽은 사라지고 그때 만들어진 9개의 문 중 유일하게 원형대로 보존된 문이다. 성문의 2층이 성당이다.

새벽의문

2층 3개의 아치문 중 가운데 문을 통해 검은 성모를 볼 수 있다. 줌으로 당기니 멀리 있던 검은 성모가 가까이 다가왔다. 황금 성의가 무거운지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다.

검은성모

검은 성모와 관련된 여러 기적 때문에 이곳은 가톨릭국가인 리투아니아에서 성지 순례의 중요한 코스라고 한다. 미사가 진행 중이라 안으로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새벽의 문을 지나면 양옆으로 성당과 수도원이 이어져 성지순례자들은 이 길을 무릎으로 기어서 가는 고행을 치렀다고 한다.
.새벽의 문‘ 옆으로 이어진 성 데레사 성당을 지나니 십자가 모양이 다른 러시아동방정교회가 나온다.

성데레사의 교회

지하에 빌뉴스의 순교자이자 성인인 성 안토니오, 요한, 유스타티오스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외관은 바로코 양식, 내부는 로코코 양식으로 18세기에 지어진 곳이다.

러시아동방정교회 입구
세 성인
러시아동방정교회

17세기 이탈리아에서 들어온 바로크양식에 리투아니아만의 독특한 양식으로 발전했는데 이것을 빌리안 바로크라 부른다. 빌리안 바로크는 상향식 전망, 두 개의 탑 대칭, 전체적으로 가벼운 형태가 특징이라고 한다.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교회 건축에서 볼 수 있는 후기 바로크 양식의 건물들은 대부분 빌뉴스에 보존되어 있다. 건축가 요한 크리스토프 글라우비츠는 빌리안 바로크 양식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이어서 만나는 곳은 빌리안 바로코 양식의 대표적인 건물 중 하나인 바실리안문, 문을 지나면 성삼위일체 교회와 바실리우스 수도원이 나타나는데 요한 크리스토프 글라우비츠가 건축한 것이다.

바실리안문

가이드를 열심히 따라가다가 광장에 서 있는 동상을 하나 만난다. 요나스 바사나비치수스의 동상으로 그는 19세기 말 리투아니아 문화부흥 운동의 주도자이다. 독립과 건국에 많은 공로를 세운 언어학자이자 역사가인 그의 탄생 176주년인 2018년 11월 23일에 세워졌다고 한다.

요나스 바사나비치수스

광장을 지나면 다시 살구빛의 교회를 만나게 된다. 성카시미르 성당이다. 빌리안 바로코 양식의 시초인 건물로 1618년에 지어졌다. 리투아니아의 수호자인 성 카시미르에게 헌정된 곳이다.

성카시미르 성당

성 카시미르 성당 맞은편에 지금은 영빈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구 시청사가 있고 그 앞은 광장이다. 구 시청사 정면 파사드의 붉은 장식은 축복의 아이를 안고 강을 건너는 빌뉴스의 수호성인인 성 크리스토퍼를 형상한 것이다.

구시청사

구 시청사가 있는 광장을 지나 좁은 골목을 들어서니 문학의 거리이다. 국민 시인 아담 미츠키에비치가 이 골목 다락방에서 살다가 비밀결사조직에서 활동한 것이 발각되어 1823년 체포되어 수감된 것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2008년 빌뉴스의 예술가들이 이 골목의 벽을 작가들에게 헌정된 여러 조각들로 장식했다. 작품마다 번호와 작가명, 작품명이 붙어 있다.

문학의 거리를 지나 걷다가 또 하나의 건축물을 만난다. 성 미카엘 성당이다. 16세기 후반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수상이 그의 가족을 위한 영묘를 만들기 위해 세운 교회로 지금은 교회유산박물관이다.

성미카엘교회와 박물관

성당을 지나 골목 안쪽에 있는 리투아니아 특산물인 호박 박물관에 들렀다. 나무에서 나온 수액이 굳어져서 호박이 되기까지는 대략 천 년가량 걸린다고 한다. 세계적인 호박 산지로 유명했던 발트해의 호박 광산은 지금으로부터 오천만 년 전에 형성되었으리라고 추정된다. 시간을 고이 간직한 호박은 호기심을 자아냈지만 구매 욕구는 생기지 않았다.

호박박물관

저 멀리 구시가지를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에 서 있는 세 십자가상을 카메라 렌즈로 당겨서 바라보면서 걷다 보니 첨탑과 붉은 벽돌로 지어진 고딕풍의 교회가 눈길을 확 끈다.

세 십자가상

나폴레옹이 프랑스로 가지고 갖고 싶다고 해서 유명해진 성 안나 교회이다. 처음 지어진 목조 교회는 1419년 화재로 소실되었고 지금의 벽돌 교회는 1495년 폴란드-리투아니아 대공 알렉산더 야기엘론치크의 주도로 건설되었다 한다.
누구든 그 앞에서 인생 사진 한 장쯤은 건지고 싶은 풍경이 아직 햇살이 다 퍼지지 않은 오전의 비스듬한 빛 속에서 반듯하고 고고하게 서 있다. 그동안 많은 교회를 보고 그 이미지들이 섞여서 구분되지 않지만 성 안나 교회만큼은 그 이미지가 온전하게 장기기억 속에 저장되고 말았으니 나폴레옹의 심정이 이해가 된다.

성 안나 교회를 보고 다시 골목길을 걸어 구 시청사 앞 광장을 지나 빌뉴스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빌뉴스 대성당 앞 광장으로 갔다. 로마 신전 형식의 거대한 도리아식 기둥이 서 있는 빌뉴스 대성당은 리투아니아 가톨릭의 정신적 지주와 같은 곳이다.

빌뉴스 대성당

성당 꼭대기에는 세 명의 성인의 상이 우뚝 서 있다. 가운데가 십자가를 맨 처음 발견한 헬레나, 왼편은 폴란드의 첫 주교인 스타니슬라우스, 오른편은 리투아니아의 수호성인인 카시미르이다.

세 성인
종탑

대성당 옆으로 하얀 종탑이 서 있다. 높은 종탑 덕분에 이곳은 약속장소로 애용된다고 한다. 해마다 성탄절이 되면 이 광장에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져 사람들을 불러모은다.
대성당 광장 앞에 ‘발트의 길’이라는 작은 조각상이 바닥에 새겨져 있다. 1989년 8월 23일 발트 3국 시민 200만 명이 모여 675m의 인간띠를 만들어 독립을 요구한 것을 기념한 것이다. 인간이 만든 가장 긴 띠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 타일 위의 스테부칼라스(STABUKLAS)는 기적이라는 뜻으로 타일 위의 S에서 시작하여 시계방향으로 3바퀴를 돌고 소원을 말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러시아의 침략이나 지배당한 경험이 있는 발트 3국은 러시아의 침략을 받은 우크라이나가 무너지면 발트 3국도 무너진다며 응원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 건물에 우크라이나 국기가 많이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발트의 길

오신다는 비가 오시지 않아 구시가지 투어를 무사히 하고 오후 여정인 트라카이성으로 향하였다. 트라카이는 리투아니아의 옛 수도로, 빌뉴스에서 대중교통으로 30분 거리에 있다. 갈베 호수 안에 그림 같이 떠 있는 트라카이성은 14세기에 리투아니아의 켕스투티스(Kęstutis) 대공에 의해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1430년에 그의 아들인 비타우타스(Vytautas) 대공이 완공하였다. 제1·2차 세계대전 등 여러 차례 전쟁으로 크게 파괴돼 1950년대에 재건했다.
트라카이에 도착하여 점심부터 먹으러 갔다. 주차장이 제법 외곽에 있어 식당까지 걸어가는 길에 반가운 꽃을 만났다. 솔체꽃, 우리나라에서도 자생으로 난 것은 보기 쉽지 않은데 이곳 길가에서 본 것이다. 누군가 꺾어 던져둔 것을 소중히 주워 가지고 왔다.

솔체꽃
키비나이

점심은 리투아니아식 만두인 키비나이와 샐러드가 나왔다. 키비나이는 만두와 비슷한 토속음식이다. 한입에 먹을 수 없이 큰 키비나이는 칼로 잘라서 먹어야 했다. 그런데 잘라놓은 것을 보니 4인 4색이다. 한 명은 가로로 길게, 한 명은 세로로 길게, 한 명은 가장자리부터 차례로, 한 명은 이쪽 가장자리부터 먹고 다시 저쪽 가장자리를 잘라서 먹고 있다. 독특하게 가로로 길게 잘라놓은 친구에게 물으니 ‘내용물이 궁금해서’라고 말한다. 이렇게 다르다니......같은 것이 보편이 아니고 다른 것이 보편인 셈이다.
점심 식사 후 트라카이성이 보이는 갈베호수 선착장으로 걸어갔다. 선착장 앞에 프레임을 만들어 놓고 성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도록 만들어 두었다.

안 찍으면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릴 풍경 앞에서 다들 이쁜 미소를 지으면서 사진을 찍는다. 멋진 곳에서 즐거운 표정으로 사진을 찍는 것은 행복한 순간을 늘리는 좋은 방법이다.
선택관광으로 요트를 타고 호수를 죽 돌아보기로 되어 있어 한 배에 4명씩 탔다. 시작은 좋았는데 오전에 내린다는 비가 드디어 호수 위로 내리기 시작하였다. 우산도 썼지만 바람이 불어서 배 안으로 빗줄기가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하늘이 여행 막바지에 시샘이라도 하시는 듯했다.

비 탓에 서둘러 배에서 내리고 나니 비가 그쳤다. 트라카이성은 굳이 배를 타지 않아도 나무다리를 건너서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천천히 성 둘레를 걸었다. 배 타고 호수 위에서 성을 조망하는 것도, 걸으면서 느끼는 한가한 여유도 좋았다.

다리를 건너 나오니 소풍을 온 듯한 아이들이 줄 지어 서 있는 모양이 이쁘다. 선착장에 앉아 있는 듯 정박한 배들의 뒷모습도 정겹다.

다시 버스는 빌뉴스 구시가지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저녁 때까지 자유시간이 생겼다. 오전에 서둘러 둘러본 구시가지를 다시 천천히 걸어보았다. 아침빛 속의 시가지와 오후의 시가지는 같은 곳이지만 또 다른 분위기이다. 테라스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여유로운 모습이 많이 보인다. 결혼식 마치고 걸어가는 한 쌍의 모습도 보이고, 바이올린을 켜는 연주자,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이들이 흘러간다.

우리도 현지인처럼 적당한 곳으로 들어가 저녁으로 간단히 피자와 맥주를 시켜서 여정의 마무리를 하였다. ‘토포필리아’, 장소라는 뜻인 topo, 사랑이라는 뜻인 philia의 합성어이다. 내 마음 속의 ‘토포필리아’는 어디인가 생각해 보았다. 떠올리면 스르르 잠이 올 듯한 평안을 가져다줄 수 있는 그런 곳, 그런 공간은 어디인가? 살아본 적도 없는데 살아봤던 것 같이 익숙하고 다시 가보고 싶고, 살아보고 싶은 그런 곳, 전생의 기억이 남은 그런 곳인가? 여행은 그런 곳을 만나기 위해서 떠나는 것은 아닐지......

내일은 마지막 날,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타고 동쪽으로, 동쪽으로 내가 잘 알고 익숙한 곳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떠나는 것은 설렘이고, 돌아가는 것은 안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