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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에(터키) 일주 9일 9-이스탄불 3

뭇새 2024. 10. 24. 19:27

튀르키에(터키) 일주 9일 9-이스탄불 3

 

2024. 9. 30. 월. 안개와 흐림
 
터키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안개가 짙게 깔려 있다. 비 예보가 밤새 있더니 조금 내린 모양이다. 내내 날이 좋다가 마지막 날이 되니 이별을 예고하듯 흐리다. 터키에서의 마지막 조식을 먹었다. 귀국하면 먹기 힘든 카이막과 꿀을 빵에 발라서 먹었다. 터키 음식에서 특히 마음에 드는 것이 빵이다.

오늘은 투어가 끝나면 저녁에 공항으로 가서 귀국편 비행기를 타야 하기에 옷차림도 긴 비행시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날은 가을답게 어제보다 거의 10도는 떨어진 듯하다. 일교차가 제법 클 듯하다.
9시에 버스를 타고 톱카프 궁전으로 향하였다. 톱카프 궁전이 있는 이스탄불의 구시가지인 술탄 아흐메트 지구에는 블루 모스크와 성 소피아 박물관도 가까이 있어 언제나 붐비는 곳이다. 게다가 어제 크루즈 배가 5척이나 도착하여 관광객이 5천 명이 풀렸다고 한다. 입구에 도착해 보니 제법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다행히 딱 적당한 가을날이라 걷는 것도, 사람들이 붐비는 것도 가을의 은총인 듯 느긋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나무들도 어제와 다르게 가을빛이 난다.
 
톱카프 궁전(Topkapı Sarayı)은 보스포루스 해협과 마르마라 해, 골든 혼이 만나는 지점에 자리하고 있는 오스만 제국의 주요 궁전이다.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메흐메트 2세에 의해 1453년 건축이 시작, 꾸준히 확장되어 15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약 400년 동안 황실의 거주지이자, 오스만 제국의 정부와 군사 작전의 본거지로 사용되었다. 오스만 제국이 멸망한 후, 1924년 터키 공화국 초대 대통령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에 의해 톱카프 궁전은 박물관으로 전환되었다. 역사적, 문화적 중요성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었다.
톱카프 궁전에서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는 하렘이다. 하렘은 황제와 그의 가족이 사적으로 생활하던 공간으로, 황후와 후궁들이 거주하던 곳이다. 또한 톱카프 궁전은 오스만 제국의 엄청난 부를 상징하는 귀중한 보물들이 보관된 곳이기도 해서 황실 의복, 보석류, 무기, 이슬람의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톱카프 궁전에는 주요 출입문이 세 개 있다.
제1문 (바비 훔아윤, Bab-ı Hümayun): 황제의 문이라고도 불리며, 궁전의 첫 번째 출입문 일반인들이 처음으로 들어가는 곳이다. 아치형의 문을 들어서니 두 번째 문으로 이어지는 너른 길이 나타나고 양옆으로 키 큰 나무들이 시원하게 늘어서 있다.

제2문 (바비 셀라믹, Bab-üs Selam)은 경의의 문 또는 중문이라고 불린다. 이 문을 지나면 궁전의 두 번째 뜰로 연결되며, 여기에 행정적이고 공적인 기능을 하는 건물들이 있다. 이 문을 통과하려면 특별한 허가가 필요했으며, 황제와 그의 가족, 고위 관리들만 출입할 수 있었다.
제3문 (바비 사아데트, Bab-üs Saadet)은 행운의 문 또는 행복의 문이라고 불리며, 이 문은 황제의 개인 공간으로 이어진다. 이 문을 지나면 황실의 생활 공간과 하렘, 황제의 개인 거처로 연결된다. 오스만 제국의 가장 중요한 의식들이 이 문 앞에서 진행되었다 한다.

이제는 박물관이 되어버린 궁전의 전시공간 중 제일 줄이 긴 곳은 보석들을 진열해 놓은 곳이었다. 특히 숟가락 다이아몬드을 보고 사진을 찍으려는 줄들이 길다. 이 다이아몬드는 약 86캐럿의 거대한 크기로, 숟가락처럼 생긴 타원형의 커팅 때문에 '숟가락 다이아몬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전설에 따르면, 한 가난한 어부가 이 다이아몬드를 우연히 발견하여 그것을 숟가락 몇 개와 바꾸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실제 역사에서는 이 다이아몬드는 17세기 또는 18세기에 나타났으며,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의 어머니가 다이아몬드를 팔았다는 기록도 있다. 이후 오스만 제국으로 넘어와 현재 톱카프 궁전에서 전시되고 있다.

내 눈에는 그림의 떡일 뿐인 다이아몬드의 화려함보다는 술탄과 그의 가족들이 입었던 옷들과 사용했던 그릇들의 정교함과 화려함에 더 눈길이 갔다.

지난밤에 충전기에 꽂아두었던 휴대전화가 충전이 안 되고 방전되는 바람에 카메라의 눈 대신 내 맨눈으로 전시품들을 직관했다. 기록은 남지 않았지만 그 순간의 즐거움은 더 큰 것 같았다.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이 아니라 톱카프 구경도 화장실 후라 전시품을 보다가 가보니 여기는 다이아몬드 앞보다 줄이 더 길다. 사람은 많은데 화장실은 달랑 하나, 그것도 이층에 있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까지 길게 줄이 이어져 있다. 1시간 가량 주어진 관람시간에서 거의 20분 이상을 화장실 앞에서 허비하고 나오니 5분밖에 안 남아서 서둘러 시계관을 들러 보았다. 오스만 제국 황제들이 소유했던 다양한 시계들이 전시되어 있다. 오스만제국의 황제들은 시계를 매우 중시해서 유럽에서 선물받은 시계들도 많아 이러한 시계들은 오스만 제국과 유럽 나라들간의 교류를 보여준다고 한다.

한정된 시간에 정신없이 주마관산으로 스쳐간 많은 전시품보다 궁전의 뜰에 서 있는 오래된 나무들에 내려앉은 가을빛이 더 기억에 남는다. 너무 더웠던 여름 뒤에 찾아온 가을 기분이었을까.

궁전 옆으로 나오니 이스탄불 고고학박물관이다.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은 세계적으로 중요한 고고학적 유물들을 소장한 박물관으로, 본관, 고대 동양박물관, 타일과 도자기 박물관으로 구성되어 고대 문명과 오스만 제국 시대의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가이드가 다 보기는 어려우니 먼저 꼭 봐야할 곳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본관에 있는 두 개의 석관이다.
알렉산더 대왕의 석관(Sarcophagus of Alexander the Great)은 1887년 페니키아 문명의 중심지 중 하나인 레바논의 고대도시 시돈에서 발굴된 왕족의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제국의 다리우스 3세와 싸운 이시스 전투(기원전 333년) 장면이 새겨져 있어 ‘알렉산더 석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석관 한쪽 면에는 알렉산더 대왕이 말을 타고 싸우는 장면이, 다른 한쪽 면에는 동료들과 사냥하는 장면이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이 박물관에서 가장 주목받는 전시품이라고 한다.

알렉산더 석관과 더불어 같이 시기에 발견된 카라벨라 석관(Sarcophagus of the Crying Women)은 BC 350년 시돈왕의 죽음을 애도하는 여인의 모습을 정교하게 조각하여 ‘우는 여인들의 석관’이라 불린다. 기원전 4세기는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을 정복하던 때로 그리스와 페니키아 문명이 교차하던 시기이다. 이 석관의 외벽에는 여러 명의 여인들이 슬픔에 잠겨 울고 있는 모습이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이 두 석관 앞에서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기원전 4세기경이니 무려 2500년 전 석관이 19세기에 발굴되어 여기 전시되어 있는 것이다. 그 긴 시간 속의 영면을 끝내고 석관이 세상으로 올라온 것은 무슨 연유인가? 섬세한 조각들을 보고 있노라니 인간의 감정은 수천 년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 선명했다.
박물관에서 제일 눈여겨 볼 유물인 두 석관을 보고, 자유시간이 주어졌는데 소장품은 방대한데, 시간은 부족하고 다리도 아파서 대부분 대충 둘러본 다음 박물관 밖에서 가을햇살을 즐기는 분위기였다. 언제나 그렇지만 박물관 관람은 피로도가 크다. 너무 많은 시공간을 경험해야 하기 때문일까?

점심은 시내에서 한식으로 된장찌개와 파전과 닭도리탕을 먹었다. 점심 후 다시 돌길을 걸어서 간 곳은 마지막 코스인 그랜드 바자르이다.

이스탄불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ar)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실내 시장 중 하나로, 1461년에 건립되어 오스만 제국 시기부터 현재까지 상업의 중심지이다. 이스탄불의 역사적 중심지인 베야지트(Beyazit) 지역에 위치해 아야 소피아와 블루모스크와도 가까운 거리에 있어 관광객들의 필수코스인 셈이다. 18개의 출입구와 약 4,000개의 상점이 있는 거대한 시장으로, 61개의 실내 거리로 이루어져 있다. 터키 공예품, 보석, 카펫, 향신료, 가죽 제품, 세라믹 등 다양한 물품을 판매한다.

입구부터 어제 야간투어할 때만큼이나 붐빈다. 시장은 역시 붐비는 맛이 있어야 하긴 하다. 가이드는 집합 시간을 알려주고 터키식 디저트인 로쿰을 100년 전통의 가게에서 사고 싶은 사람은 따로 모이라고 한 다음 자유시간을 주었다. 사람도 많고 가게도 많고, 골목도 많아서 곁가지로 난 골목으로 들어갔다가는 집합장소를 찾지 못할 듯하여 입구에서 쭉 한 방향으로만 걸어가면서 구경을 하였다.

디저트 가게가 많고 기념품 가게들이 주류이다. 가게에 들어가 로쿰도 시식해 보고, 기념으로 터키석이 들어간 은팔찌도 하나 샀다.

견과류 가게에서 남은 리라로 견과류도 조금 샀다. 그리고 가이드와 함께 1864년에 문을 연 ‘하피즈 무스타파’ 로쿰가게에 가서 피스타치오가 든 로쿰을 샀다. 로쿰은 터키식 젤리라고 불리는 오스만제국 시대부터 인기 있는 과자로 주 재료인 설탕이나 꿀, 전분을 장시간 끓여서 만드는 것으로 안에 레몬, 오렌지, 피스타치오 등 다양한 맛과 향을 추가하여 만든다고 한다.

여행 마지막 일정이라 다들 손에 쇼핑 백 하나씩을 들고 간 곳은 루프탑 레스토랑이다. 성소피아 박물관과 블루 모스크 사이에 자리하고 있어 너른 창문으로 그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야경이 멋진 곳이라는데 이른 저녁이고 흐린 날이라 멋진 야경은 머릿속으로만 상상해 두었다. 본식으로 스테이크가 나오고 마지막으로 터키식 디저트인 바클라바가 나왔다. 바클라바는 얇은 페이스트리 반죽 사이에 피스타치오나 호두를 넣고 구운 달콤한 과자이다. 루프탑이라 역시 음식보다는 풍경 맛집이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가서 수속을 하였다. 짐 부치는데 시간이 제법 걸렸다. 9시가 넘어서 비행기가 출발하는데 다행히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9시간 정도였다. 출발할 때 비행기 안에서는 한숨도 자지 못했는데 여독인지 돌아가는 비행기에서는 내내 졸았다. 두 번의 식사로 비빔밥이 나오고, 아침에 죽을 먹었는데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9시간의 비행 끝에 시차 6시간을 비행으로 흘러보내고 인천에 도착하니 어느 새 10월 1일, 다시 부산으로 가는 비행기를 환승하여 김해에 도착하니 어둑어둑해졌다.
 
여행은 돌아올 곳이 있기에 여행이다. 돌아올 곳이 없다면 그것은 그저 방황이거나 일상일 것이다. 내가 돌아올 곳으로 무사히 돌아와야 여행은 완성된다. 그리고 지금, 터키의 기억을 담은 유카립투스 차 한 잔을 타 놓고, 로쿰을 오물거리면서 이 글을 쓰는 순간은 그 완성 너머로, 또 다른 여행을 꿈꾸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