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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적 시선으로

인간사 꿈결인 듯

by 뭇새 2011. 2. 17.

입춘도 지난 2월

아침에 눈을 뜨니 눈이 하얗게 내렸다. 다행히 길이 얼지 않아 무사히 출근을 하였다.

장산터널을 빠져나오자 펼쳐지는 풍경은 말 그대로 설경이다.

바닷가쪽보다 밤새 눈이 많이 온 모양이다.

기온이 낮지 않아 눈은 차 유리창에 닿자마자 그대로 녹기 시작한다.

그리고 낮 동안 하염없이 눈이 내렸다. 

눈이 잘 오지 않는 곳에서 태어나 자란 나로서는 낮 동안 하염없이 내리는 눈은 첫경험이다.

7층 사무실, 벽면이 유리로 된 유리온실에 갇혀서 눈을 바라본다.

차가 많이 다니는 도로는 눈이 쌓이지 않지만 봄맞이를 위해 전지를 단정히 한

길가의 플라타너스는 눈을 온전히 맞다가는 눈옷을 입기 시작한다.

학교운동장도 서서히 색을 바꾸어 간다.

 

점심시간

눈발도, 바람도 세다.

이 눈 속에서 상수도 본부 앞 물방울 모양의 조각은 어떤 모습으로 서 있을까 궁금하여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물방울은 눈을 맞으며 웃고 서 있다.

 

 

 

 

 

 

 

퇴근 무렵

눈이 그쳤지만

길로 나선 차들이 적어 도로는 한산하다.

눈은 녹다가 언다.

 

다음날 아침

평상 위에 눈이 하얗게 쌓여 있다.

며칠 전 꺾어둔 매화 한 가지를 찻잔에 꽂아 눈 가운데 두었다.

설중매...

혼자 즐거워 하였다.

 

 

 

날이 푹하여

햇살에 눈은 다 녹을 것 같았다.

햇살이 얼마나 강한지

양달과 응달은 사뭇 다른 모습이다.

점심시간에만 하여도 학교운동장에는 눈이 많이 남아서

아이들은 눈싸움을 하고 있다.

 

 

 

오후 4시

운동장을 다시 보니

천지에 눈은 땅 속으로 스며들었다.

운동장은 다시 제 색을 찾았다.

건너편 짙은 회색 건물의 지붕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문득 며칠 전 읽은 일연 스님의 시 한 구가 떠올랐다.

 

快適須臾意已閑 (쾌적수유의이한) 즐겁던 한시절 자취없이 가버리고

暗從愁裏老蒼顔 (암종수이로창안) 시름에 묻힌 몸이 덧없이 늙었에라

不須更待黃梁熟 (불수갱대황양숙) 한끼 밥 짓는 동안 더 기다려 무엇하리

方悟勞生一夢間 (방오로생일몽간) 인간사 꿈결인줄 내 인제 알았노라

 

입춘도 지난 겨울의 막바지

인간사 꿈결인듯

한 바탕 눈이 내렸다가 녹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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