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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과 가르침/뇌과학

되살아나는 뇌의 비밀

by 뭇새 2011. 8. 16.

 

되살아나는 뇌의 비밀/이쿠타 사토시 지음, 황소연 옮김, 가디언 출판사


 

 

조선일보 2011년 8월 12일자  정민 교수의 世說新語에 우작경탄(牛嚼鯨呑)이란 말이 나온다. 우작은 소가 여물을 대충 씹어 삼킨 뒤, 여러 차례 되새김질을 하여 완전히 시킨다는 뜻이다. 경탄은 고래가 큰 입을 벌려서 물과 물고기 새우 등을 씹지도 않고 끌꺽 삼킨다는 말이다. 정민교수는 이 말을 독서법과 관련을 지었다.

우작은 소가 되새김질하듯 읽는 독서법으로 한 번 읽어 전체 얼개를 파악한 후 다시 하나하나 음미하며 읽는 정독을 뜻한다. 처음엔 잘 몰라도 반복해 읽는 과정에서 의미가 선명해지나 쉽지 않은 일이다. 반면 경탄은 고래가 닥치는 대로 먹이를 먹어 치우듯 폭넓은 지식을 갈구하는 것으로 자칫하면 욕심으로 수박 겉핥기가 될 수 있는 독서법, 다독을 말한다. 그런데 옛 사람들이 말하는 다독은 이 책 저 책을 많이 읽는 다독이 아니라 한 번 읽은 책을 읽고 또 읽는 다독이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 이 책, 저 책을 많이 보는 것, 다독에 익숙해진 나의 경우도 한 번 본 책을 두 번 보는 일은 드물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알고 있는 것은 말 그대로 수박을 겉으로만 핥아 그 맛을 제대로 알지는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책을 적어도 두 번은 읽으려고 애를 쓴다. 한 번만 읽어서는 그 책에 대한 독서일기를 쓰기가 어려워 읽은 것을 글로 쓰기 위해서 다시 한 번 들춰 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두 번 읽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면 처음에는 줄거리만 따라 가다가 두 번째는 대사의 묘미를 알게 되는 것처럼 두 번 읽다보면 처음에는 그냥 의미 없이 스쳐 지난 구절의 참뜻이 다가오는 때가 많았다. 어떤 이는 세 번을 읽으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 이상, 즉 행간의 의미까지 파악된다고 하였다. 그것 역시 맞는 말인 듯도 하다.


‘되살아나는 뇌의 비밀’은 잘 읽히는 책이라 한 달 전에 한 번 읽은 책이었다. ‘뇌를 변화시키면 공부가 즐겁다’라는 책을 세 번 읽고 독서일기마저도 끝내고 다시 이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앞의 책을 읽어 나가는 데는 큰 무리는 없었지만 그것을 정리하는데 아주 힘이 들었으므로 두 책이 비교가 많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책이 가지는 무게가 다르기는 하지만 책의 편집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되살아나는 뇌의 비밀’이라는 책이 일목요연하여 독자의 입장에서는 아주 편안하였다. 그리고 ‘뇌를 변화시키면...’을 힘들어 읽었기에 그 책의 바탕 위에 다시 이 책을 읽으니 새롭게 다가오는 점도 많이 있었다. 뇌과학의 측면에서 보면 뇌과학에 관한 나의 뇌세포가 신경세포망으로 형성되어 점점 두꺼워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01 뇌를 되살려낸 사람들’에는 사례가 3가지 나온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의사, 우울증을 조깅으로 극복한 남자 등, 세부적인 이야기로부터 시작하니 독자 입장에서는 부담이 덜하면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건강과 관련된 책을 보면 성공사례들만 죽 나열되는 경우가 많은데 사례만 계속되면 지적 호기심이 더 강한 독자를 붙잡아 둘 수 없다. 다행히 저자는 02장에서 이런 호기심을 만족시킬 수 있는 비교적 전문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도 뇌세포가 생성되고 변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데 그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1998년이 되어서였다. 그 이전까지 성인의 뇌세포는 불변하면 생성되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2장에서는 이 정설이 잘못되었음을 밝히는 과학자들의 노력과 연구가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흥미진진하게 전개되고 있다.

저명하지만 아집과 편견에 사로잡힌 학자와 그 아집과 편견에 상관없이 자기 분야에서 끊임없이 연구하고 파고드는 학자가 있고, 새로운 젊은 학자가 나타나서 기존 학설이 잘못되었음을 밝히는 반전이 있다.

카나리아의 노랫소리를 연구한 페르난도 노테봄은 매년 봄 수컷 카나리아가 새로운 울음소리를 기억하는 것을 연구하다가 ‘뇌에서 새로운 신경세포가 탄생하고 한쪽에서는 다른 신경세포가 죽어간다.’는 가설을 발상하게 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발상인데 1980년대만 하더라도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당시 뇌과학계의 저명한 학자 래킥은 포유류의 성체에서는 신경생성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실험결과를 발표하여 반격을 가한다. 하지만 젊은 과학자 굴드, 게이지, 에릭슨 같은 이들의 노력으로 이 가설은 인간의 해마 치상회에서 신경세포가 탄생하고 점차 자라나면서 적절한 부위로 이동하며 마침내 성숙한 신경세포로 신경회로의 구성원이 되는데 이 과정은 인간의 일생을 통해 끊임없이 되풀이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로 여겨지는 것도 그것이 실험에 근거한 증거를 찾기 전에는 가설에 불과하며 통념을 뒤집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하였다.


03장에서는 이러한 이론적 바탕 위에 기억력과 집중력을 되살리는 생활실천법, 운동과 학습의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뇌과학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운동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운동이 기억과 인지의 속도를 높여줌으로써 뇌를 활성화하고 지능을 높여준다고 한다.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운동한 쥐의 해마가 운동하지 않은 쥐의 해마보다 신경 생성이 15%나 더 활발하게 일어났다고 밝혀졌다. 행동이 뇌를 변화시킨 것이다. 뇌 역시 생물학적 진화의 결과로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가진 것이라면 뇌가 행동을 통제하는 것 이전에 행동이 뇌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눈여겨 봐야 할 사례가 있다. 미국 일리노이주 네이퍼빌에 있는 센트럴고등학교에서는 1교시가 시작되기 전 아침 7시 10분부터 시작하는 0교시 수업에 체육교사의 지도 아래 학생들은 가슴에 심장박동측정기를 달고 학교 운동장을 달리는 실험을 하였다. 각자 자신의 최대심장박동 수치(220에서 자신의 나이를 뺀 값의 80~90%) 달리게 한 후 1교시 수업을 하였다. 학기말 시험 결과 0교시 체육수업을 받지 않은 학생은 성적이 10.7 % 향상되었지만 체육수업을 받은 학생은 17% 향상되었다고 한다.

운동을 하면 해마의 신경생성이 활발해지는데 해마는 경험을 통해 얻은 정보(기억)을 뇌의 적절한 장소에 보관해두었다가 훗날 필요할 마다 불러내는 일을 하는 기관으로 해마에 손상을 입으면 학습장애와 기억력 장애가 생기기 쉽다고 한다.

학습과 운동이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이유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일이다. 애초 동물이 학습하는 이유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죽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먹이를 찾아야 하고 먹이를 숨겨야한다. 식량을 찾기 위해 돌아다니고 사냥감을 좇아 달리다보면 뇌가 활성화된다는 관점에서 보면 이는 참으로 당연하다.

학습과 운동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순서라고 한다. 뇌과학적으로 똑똑하게 두뇌를 쓰는 최고의 방법은 먼저 운동을 하여 신경세포를 많이 만든 다음 이 세포들을 학습을 통해 뇌회로에 새겨 넣는 것이다. 왜냐하면 운동을 통해 만들어진 세포도 계속 사용하지 않으면 죽기 때문이다.


운동과 공부 외에 두뇌를 좋아지게 하는 자극으로는 독서를 들 수 있다고 한다. 독서도 운동이나 공부를 하듯 규칙적으로 하면 전두엽을 변화시킬 수 있는데  내용을 상상하듯이 책을 읽으면 후두엽에 저장된 정보를 전두엽으로 끌어내 사고하게 됨으로 뇌 전체를 자극하는데 효과적이라고 한다. 요즘 독서근육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독서 역시 뇌의 변화를 일으키는 행동이라고 본다면 쉬운 독서에서부터 근육을 형성하여 점차 난이도가 있는 독서로 나아가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운동이 뇌에 좋은 또 하나의 이유는 운동이 활성산소의 악영향을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활성산소는 음식물을 산소로 분해해 에너지로 교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화학반응이 빠른 불안정한 산소로 유전자 DNA를 파괴하거나 세포막을 산화시킴으로써 신경전달물질의 정보교환을 방해하는 등 뇌의 최대의 적이다. 활성산소로부터 뇌를 지키려면 하루 30분 걷기나 하루 1.6km 달리기로 충분하다고 한다.


04장은 우울증을 고치는 생활실천법으로 운동을 통하여 뇌기능 향상뿐 아니라 우울증의 예방과 치료를 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우울증 발생이론은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에서 우울증이 발생한다는 신경전달물질 불균형 가설에서 우울증은 뇌회로가 단절된 상태로 회로 재구축을 통해 우울증을 고칠 수 있다는 뇌회로 재구축가설로 변화하고 있다. 우울증이 걸리면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의 기능이 떨어지고 학습활동이 곤란해지므로 새로운 회로의 구축이 어려워져 회로의 단절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러한 회로 단절을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운동이다.

우울증에 효과가 있는 완벽한 운동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효과가 있다고 인정된 운동의 공통점은 팔, 다리, 몸통의 큰 근육을 사용할 것. 반복적인 리듬 운동일 것으로 걷기, 달리기, 자전거, 수영, 에어로빅 웨이트트레이닝 등이다. 운동을 통해 뇌에서 신경세포가 새로 생겨 그 신경세포가 회로의 일원으로서 제 구실을 다하려면 적어도 10주가 필요하다고 한다.


05장은 뇌를 살리는 생활실천법으로서의 멘탈 트레이닝과 명상을 소개하고 있다.

하버드 의대의 알바로 파스쿠알 레오네 교수는 ‘몸을 움직이지 않고 마음만 움직여도 뇌지도를 바꿀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TMS(Transcranial Magnetic Stimulation, 두개경부자기자극)를 활용, 피아노 학습자의 뇌지도 변화를 관찰하였다.

학습자를 네 그룹으로 나누어 1그룹은 실제 특정곡을 배우고 난 뒤 하루 2시간씩 5일 동안 한 손 다섯 손가락으로 연습하게 하고, 두 번째 그룹은 특정곡을 배우지 않고 하루 2시간 5일 동안 자유롭게 한 손 다섯 손가락으로 치게 하였다. 세 번째 그룹은 첫 번째 그룹이 배우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그 곡을 암기하도록 하여 하루 2시간씩 5일 동안 피아노 앞에 앉아서 실제로 치지는 않고 손가락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머릿속으로 따라가면서 곡을 떠올리게 하였고. 마지막 그룹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실험 결과 각 그룹의 뇌를 TMS로 관찰하였더니 첫 번째 그룹은 손가락에 대응하는 운동영역이 확대되었고, 놀랍게도 세 번째 그룹도 첫 번째 그룹과 비슷한 크기로 운동영역이 확대되었다. 두 번째와 네 번째는 변화가 없었다. 결론적으로 멘탈 트레이닝은 피지컬 트레이닝과 마찬가지로 운동영역을 활성화시켰던 것이다. 상상으로 뇌가 바뀐다는 사실은 이렇게 1995년 파스쿠알 레오네에 의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


상상만으로 뇌가 변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각이나 사고방식을 바꿔도 뇌가 변할 수 있다고 한다.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이나 사물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바꿈으로써 마음의 병으로 고치는 것을 인지치료라고 한다. 우울증이나 강박장애 등 마음의 병에 효험 있는 인지치료는 뇌회로를 재구축하여 뇌를 되살리는 것이다.

캠브리지 대학교의 존 티즈데일은 뇌회로의 재구축을 위한 ‘마음챙김 명상에 기초한 인지치료(MBCT, Mindfulness-based Cognitive Therapy)법을 개발하여 기존 인지치료의 효과인 34%를 66%로 올리고, 재발율을 절반으로 낮춘 사례가 있다고 한다.

명상은 마음을 단련하는 심근 트레이닝으로 명상으로 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관심 갖기, 마음을 한곳으로 집중해야 한다. 파그노니의 실험에 의하면 3년 이상 명상을 해 온 명상가의 뇌는 집중상태로 빨리 되돌아왔다고 한다. 명상이란 대상을 정해 모든 주의를 기울이고 망상과 잡념이 생겨도 그 대상으로 되돌리는 작업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훈련이므로 집중하는 뇌로 만들 수 있게 된 결과라고 할 것이다.

 


습관이 변하면 인생이 바뀐다는 말이 있다. 습관이란 반복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므로 결국 습관이 되면 뇌회로가 바뀌었다는 뜻이다. 행동이 뇌를 바꾸고 바뀐 뇌가 다시 행동을 바꾼다. 어쩌면 꿈꾸면 이루어진다는 것은 지극히 뇌과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책을 덮으면서 마음에 남는 것을 다시 정리해 본다.


-뇌를 건강히 하려면 운동을 해야 한다. 여기서 운동이란 물리적, 정신적 운동을 모두 포함한다.

-뇌 또한 인체의 다른 기관처럼 운동에 의해 변화한다.

-운동을 통해서 뇌회로를 변화시키려면 습관화가 되어야 한다. 습관화가 되기 위해서는 반복이 필요하다.

-또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관심 없이 하는 행동은 변화가 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