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라는 것이 일상소지품이 되면서 그 본래의 용도를 잃어버린 것이 많이 있지만 그중 하나가 시계가 아닌가 싶다.
어쩌면 시계는 시간을 알려주는 용도보다는 팔찌처럼 팔목을 장식하거나, 부를 상징하는 하는 수단으로 변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대전화를 꺼내어서 보기 어려운 곳에 있을 땐 시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가지고 있던 시계가 깨져 못 쓰게 되어 버린 탓에 시계를 하나 살까 생각했다. 필요에 의한 것인지 소유에 의한 것인지를 가늠해 보다가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 중에서 대체품을 찾아보았다.
엄마 가시고 난 뒤 내게 남은 것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작은 시계이다. 작은언니가 엄마에게 선물한 세이코 시계는 언제 섰는지 움직이지 않고 방치되어 있었다.
이 시계를 고쳐서 써보리라 마음 먹고 근처의 금은방에 갔다. 주인이 젊은 사람이다. 친절하게 받아서 시계의 뒤뚜껑을 열어보려고 하는데 한참을 만지작거렸지만 열지 못한다. 마침내 도로 돌려주면서 조금 더 시장쪽으로 가면 다른 시계방이 있으니 그곳으로 가보라고 한다.
그 시계방에 가니 젊은 처자가 지키고 있다. 사장님이 점심을 먹으러 갔으니 30분 뒤에 오라고 한다. 맡겨두겠다고 하니 사장은 금방 하시니 그때 가지고 오라고 한다. 그래서 시계를 받아들고 집으로 와 버렸다. 시계는 가방 속에 잠겨서 잠시 잊혀졌다.
온천 시장 근처에 볼 일이 있어 걸어가다가 오래된 금은방을 발견하였다. 크지 않은 가게 안을 들여다보니 나이 든 주인이 앉아 있다. 들어가서 시계를 보여주고 전지를 갈아달라고 했다. 금세 뚜껑을 여는 모습이 믿음이 간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수리를 못한다고 말하면서 자기에게 잘 왔다고 말한다. 너무 오래 되어 전지만 갈면 안된다면서 그 주변의 녹도 닦아낸다.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그 자부심은 곧 이어서 젊은 사람들에 대한 불신과 비판으로 흘러간다. 오래된, 늙어가는 장인들의 푸념이다.
시계를 받아들여서 손목에 차 보았다. 오래된 시계엔 미세한 시간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하지만 손목에 잘 감기는 것이 부드럽다. 둥근 원을 따라서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한 동안 이 시계는 내 손목에서 또 다른 시간의 흔적을 남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