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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by 뭇새 2007. 12. 28.
 

■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로렌 슬레이트 지음, 조증열 옮김

에코의 서재, 2005

 

 


세상을 뒤바꾼 위대한 심리 실험 10장면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의 미덕은 단숨에 읽힌다는 점이다. 작가는 미국의 심리학자이며 칼럼리스트로 1994년과 1997년에 '미국 최고의 수필상'을 수상한 작가답게 심리학의 전문 분야를 다루면서도 마치 여러 편의 단편소설을 읽어 나가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작가는 20세기에 이루어진 심리실험 중 10가지를 골라서 그것을 통계가 아닌 이야기로 서술하여 전달하고 있다. 마치 소설을 쓰듯 1인칭관찰자의 시점과 3인칭의 전지적 작가시점을 넘나드는 시점의 변화를 통하여 다양함을 느끼게 만든다.  전문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 형식은 마치 한 편의 소설처럼 구성했다는 독특함이 단숨에 읽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10가지의  심리실험을 통하여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것은 분명 인간의 심리이지만 인간을 직접 대상으로 하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심리실험은 인간이 아닌 동물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1. 인간은 주무르는 대로 만들어진다 -B.F. 스키너의 보상과 처벌에 관한 행동주의 이론,

4. 사랑의 본질에 관한 실험 - 해리 할로의 애착 심리학,

7. 약물중독은 약의 문제인가, 사회의 문제인가 - 브루스 알렉산더의 마약 중독 실험,

9. 기억력 주식회사 - 기억 메커니즘을 밝혀낸  에릭 칸델의 해삼 실험


이 책에서도 위의 4가지 실험은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를 대상으로 실험을 한 후 그 결과를 인간에 적용하고 있다. 따라서 실험에 따른 윤리적인 문제, 실험 결과를 인간의 행동에 그대로 적용하여 일반화하는 데는 여러 가지 제약점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험 결과가  기존의 관념을 뒤집어 버리는 놀라운 발견이거나 통찰일 경우 인간 심리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혀주고 있다.

 

동물실험은 일반적으로 인간을 위해서라는 미명을 가지고 시작한다. 하지만 그러다가 권력이 강해지면 그것을 인간에게도 적용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까. 스키너박사가 딸을 실험 대상으로 상자 속에 키워 그 딸이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의혹을 받게 되는 것도 그런 맥락이 아닐까 싶다. 권력의 이름으로 저질러졌던 유태인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나 일본의 마루타실험 역시 동물 실험에 만족하지 못한 권력자들의 편집증적인 집착이 만든 것이 아닐까.

또한 인간이 생명이 다른 종의 생명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인간의 오만일 뿐이다. 인간이란 종도 결국은 소멸해 갈 한 종에 불과한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오만.


열 가지 실험 중 아래의 나머지 6가지 실험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인간을 대상으로 심리실험을 할 경우 여러 가지 제약점이 따른다. 밀그램의 실험처럼 실험 대상자를 속여서 실험하거나 실험 상황을 조작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한 신빙성에 대한 도전을 받을 수밖에 없다.


2. 사람은 왜 불합리한 권위 앞에 복종하는가? - 스탠리 밀그램의 충격 기계와 권위에 대한 복종

3. 엽기 살인 사건과 침묵한 38명의 증인들 - 달리와 라티네의 사회적 신호와 방관자 효과

5. 마음 잠재우는 법 - 레온 페스팅거의 인지 부조화 이론

6. 제 정신으로 정신병원에 들어가기 - 데이비드 로젠한의 정신 진단 타당성에 관한 실험

8.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진짜 기억인가 - 엘리자베스 로프터스의 가짜 기억 이식 실험

10. 드릴로 뇌를 뚫다 - 20세기의 가장 과격한 정신 치료


학자들은 자신의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실험을 시도한다. 그 가설이 증명되고 가설이 학설로 인정을 받게 되면 그때부터는 그 가설에 짓눌려서 다른 것을 보려 하지 않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자기의 학설에 대한 편집증적인 집착, 그 집착이 그 연구를 끝까지 끌고 간 원동력이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그러다보니 결국 학자들은 그 실험의 대상자뿐 아니라 자기 자신이 그 실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 특히 심리실험의 경우 그 실험에 집착하는 학자의 심리 역시 고려대상이다.


이 글에는 위대한 학자라는 객관적 평가 뒤에 숨겨져 있는 개인적인 모순이 드러나 있다. 특히 작가의 모순마저도 진솔하게 드러나 있어 위대함 속에 감추어져 있는 평범함이 오히려 가슴에 와 닿는다. 위대해지기 위해서 그들이 포기했던 개인적인 삶이 느껴져서 사회적 성공과 개인적 행복 사이에는 넓은 간극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들이 사회적 성공을 위해서 개인적 행복을 포기한 그 지점에서 인간의 역사나 학문이 진보할 수 있는 여지를 가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탈근대를 살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탈인간은 될 수 없다. 학문의 진보 역시 탈인간을 넘어서고자 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재앙을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이 책을 읽으며 밑줄 그은 부분들


-절반은 상징을, 절반은 통계를 다루는 심리학은 과연 진정한 과학인가?

-코슬린박사의 말을 요약하면 스키너 박사 덕분에 과학자들이 두뇌의 더 깊은 하부 구조 속으로 파고들어가 기저 신경절까지 연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p33

-밀그램은 유머 감각이 매우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어떤 과학자들보다 예술과 실험, 유머와 무자비함, 일과 놀이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좁은가를 잘 보여 주었다. .... 그는 영리하고 파괴적이고 부조리했다. 하지만 그가 사르트르나 베케트와 달랐던 점은 부조리를 측정했다는 점이다. p 65

-사회심리학에서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보다는 우리가 언제, 어느 장소에 있었는가를 더 중요시했다. p69

-나는 한 개인의 도덕적이거나 비도덕적인 행동이 고정된 성격적 특성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함께 있는가가 훨씬 더 중요하다.  p70

-인간은 대열을 무너뜨리느니 차라리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존재라는 것, 생존보다 사회적 예절을 더 중시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너무나 상반된다. 매너는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욕정보다 강하고 두려움보다 원초적이다.  p111

-종교집단이 일종의 필사적인 방어 기제로 변절하기 시작할 때는 그들의 믿음이 확실하지 않을 때와 정확히 일치했다. 한 인간 안에 존재하는 믿음과 실질적인 증거 사이의 차이는 슬레이트를 긁는 날카로운 소리처럼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p154

-인지부조화이론에서는 자신의 믿음과 일치하지 않는 행동에 관여한 보상으로 사소한 것을 받으면 받을수록 자신의 믿음을 바꿀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한다.  p156

-페스팅거는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라고 믿었다.  p157

-페스팅거가 사람들에게 1달러와 20달러를 주고 거짓말을 하게 한 실험을 동아시아인들에게 했을 때, 아시아인이 미국인보다 합리화를 훨씬 더 적게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p 170

-대부분의 인생은 어떤 특정한 터닝 포인트에 의해 정의되지 않는다. 인생의 대부분이 조금씩 점층적으로 쌓여가다가 시간이 흐른 후에야 우리가 볼 수 있는 형태로 남는다.  p 238

-20세기 초반에 그들이 학습이론이라고 불렀던 것을 20세기 후반에 칸델은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p281

-칸델 이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직관적 믿음을 물리적 증거로 입증하지 못했다. p282

-우리의 두뇌 속에 망각 능력이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때문이다. 그것이 진화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이테크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퇴적물을 던져 버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만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p 290

-크렙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그것은 뇌 세포핵 안에 살고 있는 분자로서 그것의 목적은 세포들 사이를 영원히 연결시켜주는 단백질 생산에 필요한 유전자들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그것을 은유적으로 설명하면 크랩은 '세포 접착테이프'와 같다. p 285

-하지만 확신하건대, 어떠한 약도 노쇠현상을 무한정 연기하지는 못하리라. 우리가 탈근대를 살고 있는지는 몰라도 탈인간이 될 수는 없다. 어떠한 과학분야도 우리가 육체에서 벗어나게 해주지는 못한다. 결국 빛은 꺼지고 우리는 암흑 속으로 다시 들어가리라.  p 296

(2007.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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