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발트 3국 여행기 7-핀란드 헬싱키
2023. 6. 19. 월 여행 7일차, 어느 새 후반으로 접어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일출을 보리라 기대하고 나섰지만 해는 구름에 갇혀서 거의 보이지 않았다.



선상으로 올라가니 바람은 거세지만 날은 더할나위 없이 맑아지고 조금 시원해졌다. 선상 뒤쪽에 수평선을 향하여 멋진 그림이 놓여 눈길을 끌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강아지 화장실이다. 인간은 감히 누리지 못할 곳에 강아지들은 대양을 바라보면서 배설을 할 수 있다니...부러울 따름이었다.


우리가 탄 배는 아침 일찍 헬싱키에 도착했으나 하선 수속은 10시가 되어야 했기에 배 안에서 시간을 보낸 뒤 30분 전부터 하선하기 위해 줄을 섰다. 이번 여행에서 나라와 나라 사이를 이동하면서도 여권검사나 세관 검사 없이 입국할 수 있는 것은 셍겐조약 덕분이다. 유럽연합 국가 간 체결된 국경 개방 조약인 셍겐조약에 이번 여행에서 방문하는 7개국이 모두 가입되어 있기에 하루에 한 나라씩 이동해도 통관을 해야하는 번거로움은 없었다. 핀란드는 유럽연합에 가입되어 있고 유로를 쓰는 유로존국가이기에 유로 사용이 자유롭다. 노르웨이는 유럽연합국도 아니고 유로존도 아니다. 스웨덴은 유럽연합이나 유로존은 아니다. 덴마크는 유럽연합에 속하지만 유로존은 아니나 유로가 통용된다. 그동안 거쳐왔던 나라에서는 유로를 쓰면 거스름돈을 자국화폐로 주기 때문에 환전해 갔던 유로 대신 가급적 카드를 사용했다.

핀란드어로 ‘촉촉한 땅’이라고 불리는 핀란드는 스칸디나비아로 불리는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와는 종족, 언어가 다르다. 이 세 나라는 인도유럽어족인데 비해 핀란드어는 우리와 같은 우랄어족에 속한다. 핀란드인의 조상은 핀족이지만 스웨덴의 오랜 지배로 유전적으로는 75%가 스웨덴인이라고 한다. 스칸디나비아 3국이 입헌군주국인 데 핀란드는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선출하고 4년마다 의원을 선출하는 나라다. 그런데 배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보는 거리풍경에서는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였다.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든 비슷하기 때문인가. 여행을 떠나보면 보이게 된다. 사람 사는 모습은 결국 다른 듯하지만 보편적이라는 것.




과도한 경쟁을 지양하고 아이들의 자율을 중시하는 핀란드식 교육이 PISA(Program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국제 학업성취도평가)에서 높은 성적을 거두어 세계의 관심을 끄는 숲과 호수의 나라에 왔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헬싱키에서의 고작 몇 시간, 오후에는 또 배를 타고 에스토니아로 이동해야 한다.
비 그친 뒤 볼에 스치는 바람과 햇살이 딱 적당한 오전, 발틱의 아가씨로 불리는 헬싱키에서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북유럽 최대 규모의 그리스정교회인 우스펜스키대성당이다. 언덕 위 붉은 벽돌로 된 성당의 푸른 빛 첨탑과 돔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른 시간이라 햇빛이 아직 낮게 비추어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한 성당은 밖에서 보아도 근엄하고 인상적이었다.
핀란드는 1150년부터 660년간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고 1809년부터 1917년까지는 러시아의 지배를 받아야 했다. 핀란드의 수도는 원래 스웨덴과 가까운 투르쿠였다. 그러다가 러시아의 지배를 받게되자 러시아와 가까운 헬싱키로 수도를 이전하게 되었다. 이 성당은 러시아 지배기인 1868년 러시아의 건축가가 지었다.
우스펜스키는 ‘성모의 영면(永眠)이라는 뜻의 러시아어이다. 러시아가 100년 넘게 핀란드를 지배하였지만 정교회 신자는 1%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 붉은 벽돌과 청록빛 첨탑의 성당은 우리 같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파란 하늘 아래 고고히 서 있는 성당은 모양뿐 아니라 색조도 조화로워서 사진이 대세인 이 시대에 인생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 되고 있으니 신성모독인가?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은 정부청사로 둘러싸인 원로원광장에 있는 헬싱키 대성당이다. 우스펜스키대성당과 조금 떨어져 마주 보고 있는 이 성당은 우스펜스키대성당과 대조되게 하얀 외관에 푸른색 돔 형태의 지붕이 있는 핀란드 루터교 성당이다.



핀란드의 루터교는 기존 가톨릭과 예배 형식은 비슷하나 검소함과 온건함을 미덕으로 삼고 여성 성직자도 허용한다. 루터란 대성당이라고도 불리는 헬싱키 대성당은 독일인 카를 엥겔이 설계, 1830년에 착공, 1852년에 완공하였다. 러시아황제 니콜라이 1세에게 바치기 위해 만들어졌기에 독립 전까지는 성 니콜라이 성당이라고도 불렸다. 대성당 앞이 원로원 광장이다. 헬싱키로 수도를 옮길 때 원래 일반 주거지였던 곳에 정부 청사, 도서관, 대학 등을 이곳 주변에 두어 헬싱키의 상징적인 공간이 되었다.
이 광장에 우뚝 서 있는 동상이 하나 있는데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다. 그는 핀란드가 입헌군주국 형태로 자국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하게 하고, 언론의 자유 부여, 군대 유지 등 자치권을 부여해주었기에 핀란드 의회에서 자발적으로 이 동상을 세웠다고 한다. 독립 이후 1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지배자였던 황제의 동상은 그대로 두는 것은 우리로서는 납득하기 어렵지만 지나간 역사를 받아들이는 것일 수도 있고, 지정학적 위치를 바꿀 수 없는 핀란드로서의 전략일 수도 있겠다.
핀란드는 러시아가 러일 전쟁 등으로 약해진 틈에 1917년 독립을 선포했다. 하지만 소련이 핀란드를 침공한 제1차 소련핀란드전쟁(1939~1940)에서 많은 사상자는 났지만 이 전쟁으로 소련에 흡수된 발트3국과 달리 핀란드는 나라를 지켜냈다. 1년 후 독소전쟁(1941~1945)이 일어나자 핀란드는 독일편에 섰고, 이에 러시아와의 국경에서 제2차 소련핀란드전쟁(1941~1944)이 발발, 미국의 원조를 받은 소련이 승리, 패전국이 된 핀란드는 거액의 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종전 후 3억 달러에 달하는 배상금을 모두 지불하여 2차대전 패전국 중 유일하게 전쟁배상금을 모두 지불한 나라로 기록되었다고 한다. 핀란드의 국민성을 나타내는 말로 ’시수Sisu’라는 단어가 있는데 인내, 용기, 악, 깡 등을 모두 아우르는 말이라고 한다. 강대국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들의 저력을 알 수 있는 말이다.
현지생활을 알 수 있는 카우파 광장 시장까지 걸어가는데 디자인의 나라답게 도시의 풍경이 그림같다.



소박한 노점상들이 늘어서 있는 시장에서 짧은 자유시간을 가졌다. 갖가지 과일을 늘어놓고 파는 것은 어느 나라나 같다.


이 계절에만 먹을 수 있다던 납작복숭아를 사고 체리도 사서 먹어보고 모자나 머플러 등을 기웃거리다 보니 시간이 훌쩍 가 버린다. 광장시장 산책 후 점심은 현지식으로 뷔페였는데 채식이 다양해서 먹을 만하였다.



점심 먹은 뒤 소화도 시킬 겸 천천히 걸어간 곳은 핀란드의 국민작곡가 시벨리우스공원이었다. 핀란드가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시기에 태어난 시벨리우스는 핀란드의 민족 서사시인 ‘칼레벨라’를 교향시로 발표하고, 제2의 국가처럼 여겨진다는 ‘핀란디아’를 작곡한 사람으로 많은 핀란드인의 사랑을 받는 작곡가이다.



1967년 시벨리우스 사망 10주기를 기념하여 이 공원이 만들어졌다. 600여 개의 파이프로 만든 기념비와 무표정하고 화난 듯한 표정의 시베리우스의 두상은 여류조각가 에일리 힐쿠넨 작품이다.

조각상을 본 다음 계속 숲길을 따라가면 바다풍경이 소박하다. 저 멀리 핀란드인들이 좋아하는 시나몬롤로 유명한 카페 레카타가 있다고 가이드가 알려주었다.


여유가 있는 자유여행이라면 커피와 시나몬롤을 즐겨도 좋았을 것이다. 대신 천천히 걸어서 늘씬하게 서 있는 자작나무 그늘을 즐겼다.


헬싱키에서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커다란 암석을 깨어 만든 템펠리아우키오(암석교회)다. 겉으로 봐서는 교회가 있을 것 같지 않은 언덕을 올라가면 입구가 나온다. 입구에도 교회임을 알려주는 십자가를 찾기가 어렵다. 건축가 겸 가구디자이너였던 티모 수오말라이넨과 투오 수오말라이넨 형제가 설계한 곳이다. 암석교회라 불리는 이유는 커다란 바위의 속을 파내 내부 공간을 만들고, 그 위에 구리로 만든 돔 지붕을 덮어 지었기 때문이다.



입구에 도착하여 입장료를 지불하면 종이팔찌를 끼워준다. 안으로 들어가면 벽은 암석을 그대로 살리고 천정은 구리로 된 돔을 올려서 이채롭다. 천정이 하나의 우주를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파이프오르간을 치면 놀라운 공명이 생긴다고 하니 자연석 동굴 속에 만든 연주회장 같은 느낌이다. 밖으로 다시 나와 보니 그 안에 그런 공간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이 안 될 정도로 나지막하게 숨어 있다.







반 나절의 행보로 핀란드와의 조우는 끝이 났다. 이제는 쾌속선을 타고 발트해를 건너서 에스토니아의 탈린으로 이동하게 된다. 발틱국가로 떠나게 되는 것이다. 4시에 탈린행 탈링크 쾌속선을 탔다.



약 2시간 후 탈린에 도착하여 구시가지에 있는 중국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호텔에 들어왔는데 씻고나니 10시가 넘었고 10시 반이 되어서야 해는 지려고 한다. 백야라고 햐도 해가 지면 이곳은 조금 어둑해지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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