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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기, 여행기/해외여행

북유럽+발트3국 여행기 6-스웨덴 스톡홀름

by 뭇새 2023. 11. 24.

북유럽+발트3국 여행기 6-스웨덴 스톡홀름
 
2023.6.18. 일 비 스웨덴 스톡홀름
아침에 일어나 호텔 안을 둘러 보니 호텔 이름에 있는 fröding은 이 지역에 살았던 작가의 이름이었다. 호텔 안에 그의 얼굴과 작품들이 소개되어 있다. 작가이름을 따서 호텔이름을 짓다니 낭만적이다.

호텔 조식 후 스톡홀름으로 이동하였다. 이동하는 동안 풍경은 노르웨이와 사뭇 다르다. 노르웨이는 산이 이어졌는데 스웨덴은 산은 거의 보이지 않고 대신 들판에 나무들이 서 있는 푸른 숲이 이어진다. 산림의 나라에 사는 나로서는 낯선 풍경이다. 산은 없고 들판과 나무들이 야트마하게 이어진다. 초록이 싱싱하다.

스톡홀름에 도착하여 먼저 점심부터 먹었다. 카레 비슷한 음식이었는데 내 입맛에 들지는 않아 조금만 먹었다.

스톡홀름은 반 나절만 머물고 다시 크루즈를 타고 이동을 해야하니 점 찍듯이 주요관광지만 들를 수밖에 없다. 비가 오락가락해서 이동할 때는 우산을 쓰고 다닐 수밖에 없다. 그동안 날씨가 좋았으니 평균으로 보면 지금쯤 비가 오는 것이 그리 불운은 아닌 셈이다. 단지 우산 쓰고 사진찍기가 조금 불편할 뿐이다. 하지만 비 오는 날은 색깔이 선명해져서 색이 좋은 사진을 건질 수는 있으니 하나가 나쁘면 하나는 좋은 법이다.

스톡홀름은 1252년에 이미 도시의 형태를 갖추었고 1289년에는 스웨덴에서 가장 큰 도시로 성장했다. 스톡홀름이라는 지명은 통나무(stock)와 섬(holm)이 결합한 말이다. 섬으로 구성된 도시의 경계를 통나무를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설, 도시 방어를 위해 통나무를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설 등 다양하다.
스톡홀름에서 제일 먼저 간 곳은 진수식날 가라앉아 300년 이상 바다속에 잠겨 있다가 발굴된 바사호를 볼 수 있는 바사박물관이다.

버스에서 내리니 우산을 써야할 만큼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1990년 문을 연 바사 박물관은 1628년 스톡홀름항에서 침몰한 스웨덴의 호화 왕실 전함인 바사호가 전시된 곳으로 총 7층으로 17세기 군함의 이색적인 모습이 인양 당시 발견된 목조품과 유품도 함께 전시돼 있다.

발트해 통행세 문제로 폴란드와 전쟁 중이던 구스타브 2세는 강한 해군과 전함을 필요성을 느껴 크고 견고한 전함을 만들라고 명령을 했다. 3년 후 1628년 완공된 바사호는 육지에서 불과 120m밖에 나가지 않아서 천천히 가라앉아 버렸다. 그나마 출항하자마자 침몰하여 대부분의 선원들은 구출된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후 333년 동안 바닷속에 있다가 1961년 인양되어 거의 원형에 가깝게 복원이 되어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으니 이 배의 운명은 전투가 아니라 예술이었던 셈이다. 180개의 조각으로 치장된 화려하고 아름다운 배를 만들어서 전쟁을 하려고 했다니 구스타프 2세의 낭만이라고 할까. 333년간 가라앉아 있던 배를 인양하여 실패한 배를 전시하는 박물관을 만들었으니 그 후손들 또한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하여 스톡홀름 대성당 앞을 지나 입헌군주국인 스웨덴 왕궁을 본 다음 13세기부터 19세기 건축물이 공존하는 감라스탄으로 향하였다. 

스톡홀름대성당
스웨덴 왕궁

구시가지라는 뜻인 감라스탄은 스톡홀름의 중심에 있는 작은 섬으로 스웨덴의 옛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구시가지라 걸어서 다녀야 하는데 비가 그나마 조용조용 내려서 다행이었다.
감라스탄에는 스톡홀름에서 가장 오래된 광장인 스토르토르예트광장이 있다.

옛날우물

1389년 이후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덴마크의 여황 마르그레테 1세의 통치를 받게 된다. 커지고 있는 독일세력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해 이 세 나라는 덴마크를 중심으로 칼마르동맹을 맺게 된다. 하지만 1400년 초부터 덴마크의 독단과 높은 세금에 불만을 가진 스웨덴은 동맹은 유지하되 독립된 왕권을 지닌 국가로 인정받기를 원하였다. 스웨덴 내에서 왕권 계승문제로 분열이 일어나자 덴마크는 이를 이용하여 주교, 귀족 등 스웨덴 왕의 지지세력 100여 명을 단두대에서 처형했다. 이 학살이 일어난 곳이 이 광장이다. 비극적 역사를 가진 이곳이지만 지금은 다양한 시대를 반영한 건축물이 공존하는 공간이 되어 스톡홀름을 찾는 많은 이의 필수탐방 코스가 되고 있다. 잠시 자유시간이 있어 오래된 돌이 깔린 좁은 골목길을 돌아다녔다. 골목 저 끝에 복숭아빛의 스톡홀름대성당의 첨탑이 보였다.

다음 일정은 스톡홀름 시청사였다. 내부 관광이 선택관광이었는데 행사가 있어 개방하지 않는다 하여 외부만 구경하였다.

14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스톡홀름은 멜라렌 호수와 발트해가 만나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멜라렌 호수는 원래 발트해의 만이었는데 지각변동으로 만 입구의 수심이 얕아지면서 호수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스톡홀름에 들어서자마자 섬들과 다리들 사이로 보이는 물이 바닷물이 아니고 민물이라는 말이다. 시청사는 멜라렌 호수 바로 앞에 있다. 마침 비 내리는 중에도 요트경기가 진행중이다.

쿵스홀멘섬 남쪽에 있는 시청사는 1923년 스웨덴 건축가 랑나르외스트베리가 설계한 것으로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두칼레 궁전과 산마르코 광장의 종탑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스톡홀름은  섬과 운하 덕분에  '북유럽의 베네치아'로 불린다. 약 800만 개의 벽돌과 1900만 개의 금도금 모자이크로 만들어진 이곳은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노벨상 시상식 후 만찬이 열리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시청사 안으로 들어가야 볼 거리가 많다고 하는데 들어갈 수는 없고 밖에는 비가 오고 있으니 붉은 벽돌만 보고, 멀리 호수 너머 도심 풍경만 바라볼 뿐이었다.

오늘은 실자라인 크루즈를 타고 배 안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헬싱키로 이동하는 날이라 배 타러 바삐 이동하였다. 배는 저번에 탄 배보다 더 크다.

저녁뷔페도 종류도 많고 와인과 맥주도 무제한 무료였지만 한 잔이 딱 적당한 우리들에게는 무제한이 별의미가 없었다. 면세점들도 처음 볼 때는 화려하고 다양한 듯했는데 다녀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배 안에서의 시간이 많았지만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서 밖에 나갈 수도 없으니 결국 면세품가게만 들락거릴 수밖에 없었다. 바다 위에서 또 한번의 백야를 즐길 수 있기를 내심 기대했었는데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많은 것 중에 가장 어쩔 수 없는 것이 날씨이다. 이번 크루즈는 온전히 선실에 갇혀서 지낸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