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행일기, 여행기/해외여행

튀르키에(터키) 일주 9일 3-카파도키아 열기구, 콘야, 아피온

by 뭇새 2024. 10. 9.

튀르키에(터키) 일주 9일 3-카파도키아 열기구, 콘야, 아피온

 

2024. 9. 25. 수. 맑음
눈을 뜨니 4시 반경, 동굴호텔이 집처럼 편안해서 시차를 느끼지 않고 푹 잘 잤다. 방에 들어서는 순간 왠지 편안하더니 그게 수면으로 이어진 모양이다.
오늘은 세계적에서 가장 유명한 열기구 체험장소인 카파도키아 열기구를 타는 날,  5시 20분에 호텔을 출발하였다. 기상상태가 좋아야만 가능하기에 이곳에 왔어도 타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하는데 일행 중 날씨요정들이 많이 있는지 날은 그지 없이 맑다.
아직 어둠살이 가시지 않은 골목을 벗어나 조금 가니 거대한 열기구들이 나타났다. 지면에 기대 서 있는 풍선에 열풍을 넣기 시작하자 웅크리고 있던 열기구들이 부풀어 오르는 것이 화가 나면 몸이 커지는 헐크 같아 보였다. 새벽 어스름 속에서 부풀어 오르는 거대한 생명체들을 보는 느낌이었다. 열기구는 기상 사정으로 해 뜨기 전 한 번만 뜰 수 있다고 하는데 하루에 백 개 가량의 기구가 뜬다고 한다.

아르키메데스의 부력 법칙에 따르면 공기 중의 어떤 물체가 공기보다 가벼우면 위로 뜨게 된다. 열기구의 큰 풍선(기구)에 있는 공기를 가열하면, 공기는 팽창하고 밀도가 낮아져 열기구 내부의 뜨거운 공기가 주변의 차가운 공기보다 가벼워진다. 뜨거워진 공기는 위로 올라가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기구 내부의 공기가 가벼워지면 열기구 전체가 위로 떠오르게 된다. 파일럿은 열기구 아래에 있는 버너를 사용해 공기를 가열하며, 더 높이 오르고자 할 때는 가열을 더 강하게 하고, 천천히 내려가고자 할 때는 가열을 줄이거나 멈춘다. 기구 안의 공기가 식도록 하여 밀도가 높아지게 하기 위해서이다.
열기구에는 사람이 탈 수 있도록 큰 바구니를 매달아 두었는데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중간부분은 네 사람씩 쌍으로 타고, 가장자리에는 세 사람씩 쌍으로 탔다. 높이가 있어서 바구니로 오르는 것부터 만만찮았다. 나는 낯선 사람들과 함께 세 명이 타는 가장자리로 올랐다.

바람이 불지 않아서 열기구는 천천히 지상에서 천상으로 올랐다.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무서울까 했는데 바람이 안 불어서인지 기구는 아주 조용히 둥실 오르고, 오른 다음엔 거의 움직임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한가로이 이리저리 방향을 틀었다. 올라갈 때의 그 느낌이 공중에 떠 있을 때보다 더 장쾌하였다.

위에서 내려다 보니 카파도키아의 흰 산록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어제 지프를 타고 누비었던 계곡들이 눈 아래에 펼쳐져 있다. 열심히 휴대전화의 카메라로 이 풍경을 찍어 보았다. 하지만 눈으로 보는 풍경을 작은 화면에 담기는 역부족이었다. 카메라의 화각에 갇히지 말고 사진을 포기하자 대자연은 온전히 내 눈으로, 가슴으로 가득 차 왔다. 사진을 포기하고 그냥 그 풍경 속에 떠 있기로 하였다. 이 풍경 속에 있을 기회가 유일무이함으로 사진을 찍느라 그 순간을 한정하고 싶지 않았다. 높은 곳에 올라서 손녀한테 보낼 동영상 편지를 녹화하는 맞은편 바구니 속 젊은 할머니의 표정이 행복해 보인다. 세상 모든 사람을 손녀, 손자 보는 눈으로 보면 갈등도 싸움도 없다고 하더니...멋진 풍경을 보면 떠오르는 그 얼굴이 사랑하는 사람이리라.
여명이 동쪽에서 서서히 붉은 빛으로 떠올랐다. 해가 뜨자 맞은 편의 로즈밸리가 장미빛으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그 풍경을 보여주려고 파일럿은 다시 열을 가해 위로 올라갔다가는 내려왔다.

거의 1시간이나 걸린 비행이었다. 열기구가 트럭 위로 정확하게 내려 앉은 후 공기를 빼고서야 바구니에서 빠져나왔다. 열기구와 함께 운행했던 파일럿들이 탑승장에게 기념으로 삼페인 한 잔과 인증서를 한 장씩 주었다.

이번 여행의 최고 하이라이트일 열기구 투어를 무사히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아침을 먹었다. 터키식 아침식사인 카흐발트는 모닝커피 전에 먹는 식사를 가리키는 말이라 한다. 식탁에 차려져 있는 정갈한 한 상은 보기에도, 입맛에도 딱 좋았다. 치즈와 샐러드, 과일, 빵, 계란 등이 맛갈스러웠고 세 종류의 올리브도 짜지 않고 고소했다. 갓 짠 물소의 젖을 저온에서 끓여 나오는 지방으로 만든 카이막을 발라 천연꿀을 곁들여 먹는 빵은 자꾸 손이 가는 맛이었다. 만족스러운 아침식사였다.

방으로 돌아와 짐을 챙긴 다음 8시 반에 호텔을 나섰다. 카파도키아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신비한 지하도시 데린쿠유(Derinkuyu)이다. 이곳 지형이 파기 쉬운 화산재로 되어 있기에 오래 전부터 외부인의 침략과 종교적 박해를 피해서 건설한 지하도시이다.

카파도키아에 이런 지하도시가 40여 개 발굴되었는데 데린쿠유가 그중 대표적인 곳이다. 데린쿠유 지하도시는 1963년 한 주민이 자신의 집을 개조하려고 벽을 허물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발굴해 보니 깊이가 8.5미터에 달하고 최소 8층 이상이 확인되었다.
인구 삼만을 수용할 수 있는 이 지하도시는 기능이 방어였기에 좁고 복잡한 통로를 따라 만들어졌으며 그 안에 방, 주방, 교회, 학교도 있고 심지어 마구간과 양조장도 있는 거대한 공간이다. 지하에 있지만 놀랄만한 환기시스템을 가지고 있어 환기 통로를 따라서 신선한 공기가 유입되었다.

한때는 치열한 삶의 공간이었다가 오랜 시간 동안 시간 속에 잠들어 있다가 이제는 관광지가 되어 전세계 각지의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곳이 된 지하공간... 설계도도 없이 어떻게 만들어내고 유지했는지 생존을 위해서 인간이 개미와 다른 게 무엇인가 잠시 생각하게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인간이 얼마나 정교해질 수 있는지도 가늠할 수 있었다.
 
지하도시를 나와서 다시 버스를 타고 콘야로 이동하였다. 3시간 이상 걸렸다. 차창으로 지나가는 풍경은 그저 단조롭다. 평원인데 황량하고, 나무도 별로 없고 녹지도 아닌 건조한 풍경이 이어졌다.

콘야 시내로 들어가기 전에 현지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스프를 먹고 난 뒤 나온 얇은 피자빵에 토마토 절인 것, 적양배추 절인 것, 파슬리 잎 등을 얹어서 김밥처럼 말아서 먹으니 맛이 있었고 주요리인 소고기로 만든 케밥은 먹을 만하였다.
고원지대에서 내려왔더니 날씨가 달라져서 이제는 몸이 저절로 그늘을 찾게 될 정도로 햇살이 따갑다. 점심을 먹은 뒤 이슬람 종파 중 수피파의 사원이었다가 이제는 박물관이 된 메블라나 박물관을 방문하였다.

수피파(Sufism, 또는 Tasawwuf)는 이슬람 신비주의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슬람 신앙의 내적, 영적 측면을 깊이 탐구하는 운동이다. 수피파는 이슬람의 엄격한 율법적 접근보다는 개인의 영적 수련, 사랑, 명상 등을 통한 신과의 직접적인 연결을 중시한다. 수피파는 종종 음악과 춤을 영적 수행의 중요한 수단으로 여긴다.
특히 터키의 메블라나 교단에서 행해지는 세마(Sema) 의식은 잘 알려진 수피파 춤으로, 수행자들이 회전 춤을 추면서 신과의 영적 합일을 추구한다. 메블라나 교단은 창립자인 루미의 가르침을 따르는 수피 교단으로, 루미의 시와 철학을 통해 신과의 합일을 추구한다. 춤을 출 때 입는 의상도 중요한데, 하얀 드레스는 영혼의 순수함을 상징하고, 검은 망토는 세속적 욕망을 상징하며, 머리에 쓰는 긴 모자는 무덤을 상징한다고 한다. 대표적인 수피파 댄스는 터키의 콘야에서 매년 열리는 메블라나 축제에서 볼 수 있다.

루미(Rumi, 1207-1273)는 수피즘(Sufism)의 가장 유명한 시인이자 철학자, 신학자로 본명은 잘랄루딘 무하마드 발키(Jalal ad-Din Muhammad Balkhi)이지만, 오늘날에는 주로 루미로 알려 있다. 루미는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의 발흐에서 태어나, 후에 터키의 콘야에 정착하여 그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루미의 가르침은 오늘날까지 전 세계에서 사랑받고 있으며, 는 특히 괴테가 가장 존경하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류시화 시인의 글에 자주 인용되곤 하던 ‘루미’라는 시인이 이곳 콘야의 수행자였음은 여기 와서야 알게 되었다. 박물관에는 루미의 관과 그가 입었던 옷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루미의 관
루미의 옷

봄의 정원으로 오라/잘랄루딘 루미
 
봄의 정원으로 오라.
이곳에 꽃과 술과 촛불이 있으니
만일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이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만일 당신이 온다면
이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는가.

다음은 루미가 생전에 제자들을 지도하면서 정리한 교훈으로 루미 사상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Cömertlik ve yardım etmede akarsu gibi ol. 남에게 베풀거나 도움을 줄 적에는 흐르는 물과 같이 하라.
Şefkat ve merhamette güneş gibi ol. 연민과 관용은 태양과 같이 하라.
Başkalarının kusurunu örtmede gece gibi ol. 타인의 흠을 덮어줄 적에는 밤과 같이 하라.
Hiddet ve asabiyette ölü gibi ol. 분노와 원망은 죽은자와 같이 하라.
Tevazu ve alçak gönüllülükte toprak gibi ol. 겸손과 겸양은 땅과 같이 하라.
Hoşgörülükte deniz gibi ol. 너그러움은 바다와 같이 하라.
Ya olduğun gibi görün, ya göründüğün gibi ol. 있는대로 보거나, 보는대로 행하라.
 
박물관 입구로 들어가면 소박한 장미정원이 나온다. 장미는 철이 조금 지나서인지 그리 많지는 않지만 아직은 남아 있다.

이슬람 사원이었다가 박물관이 된 곳이라  안으로 들어가니 그림은 없지만 문양이 화려한 이슬람의 정취가 물씬 난다. 절집에 가면 볼 수 있는 현판과 같은 것들이 여러 개 걸린 것이 이채롭다.

사원 밖은 예전 수피파의 수행자들이 머물던 공간인데 조촐하고 단정하다. 옆 건물로 들어가니 수행자들의 모습과 세마의식을 보여주는 실물 크기의 모형을 만들어 놓았다.

페르샤의 시인으로만 알고 있었던 루미를 이곳에서 만난 것이 오늘의 놀라움이다.
 
다시 버스를 타고 3시간을 달려서 아피온의 NG AFYON 호텔에 들어왔다.

아편과 발음이 비슷한 아피온은 실제 드넓은 아편밭이 있는 곳으로 의학용 진통제인 모르핀 생산만을 목적으로 재배되는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편과 관련된 것은 이름뿐,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체크인하여 짐을 풀고 뷔페식 저녁을 먹었다. 채소와 과일 풍부하고 특히 디저트의 종류는 엄청났지만 모두 너무 달아 보였다.

저녁을 먹고나서 10시까지 한다는 온천목욕탕에 갔다. 아피온은 온천으로도 유명한 곳이란다. 수영복 챙겨 입고 들어간 온천탕은 제법 넓고, 온도에 따라 세 군데로 나누어져 있다.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우리끼리 편하게 따뜻한 물놀이하고 씻고 돌아왔다. 내일부터는 9시 출발이라 하니 조금 여유가 생기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