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24일. 화. 흐리다 비 내림
화무십일홍이라더니 정말 열흘 이상 버티는 꽃은 드물다.
한꺼번에 핀 꽃들은 한꺼번에 지고
차례차례 핀 꽃들은 차례차례 진다.
지난 주 하얗게 피라칸다꽃이 절정이더니
그 흰빛은 이제 시들어 버렸다.
꽃에 비해 잎들은 끈기가 있다. 서두르지 않고, 지치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킨다.
큰 나무에 자잘한 보랏빛 꽃을 달고 있는 것이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자세히 보니 '멀구슬나무'
멀쩡한 구슬들이 달린 것처럼 보인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런 시가 뜬다.
비 개인 방죽에 서늘한 기운 몰려오고
멀구슬나무 꽃바람 멎고 나니 해가 처음 길어지네
보리이삭 밤사이 부쩍 자라서
들 언덕엔 초록빛이 무색해졌네······
-다산 정약용 선생이 1803년에 쓴 〈농가의 늦봄(田家晩春)〉-
다산의 시에 등장하여 문학적인 스토리를 더하고 있다.
원래 멀구슬나무는 아열대의 기후에서 아름드리로 자라는 큰 나무다. 우리나라는 추위를 버틸 수 있는 한계 지역이다. 워낙 빨리 자라는 나무임에도 비교적 단단하고, 아름다운 무늬를 갖고 있다. 열매는 처음에는 파란색이나 가을에 들어서면 노랗게 익는다. 달콤하여 먹을 수 있으며, 옷장에 넣어 나프탈렌 대용으로 쓰고 씨에서 짠 기름은 불을 밝히는 데 쓰인다. 염주를 만들 수 있다 하여 처음에는 ‘목구슬나무’로 불리다가 이후에 ‘멀구슬나무’가 된 것으로 추정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