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날이 풀려서 바닷가 산책을 나섰다.
눈이라도 올 듯한 하늘이었는데 걷다보니 바다쪽은 어느 새 말갛게 갰다.
바다는 크리스마스 이브인데도, 코로나 때문에 한적하다 못해 적막하다.
발자국이 찍히지 않은 모래사장에 잔잔한 파도가 밀려왔다가 모래 아래로 스미어가면서 입체감을 만들어주었다. 빛까지 제 몫을 해 준다.
날이 따뜻해서 발을 벗고 걸어볼까 하다가 그냥 운동화를 신은 채 걷기 시작하였다. 물이 적당히 빠져서 모래가 단단하다.
파도가 하도 은근하여 물 가까이 가도 신발도 적시지 않고 조용히 넓은 바다쪽으로 사라진다.
한적한 바닷가에 낚시줄 두 개를 높이 드리우고있는 검은 옷 입은 여인 한 명이 눈길을 끈다. 대부분 반대편에서 낚시를 하던데 그녀는 홀로 낚시줄을 던지고 가만히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한다.
두 번 정도 왕복하고 나니 날은 더 맑아지고 바다빛도 더 선명하다. 보기 드물게 물 아래로 선명하게 빛이 투과되어 아롱거린다. 자세히 보면 시간의 퇴적층까지도 보여줄 듯한 빛줄기들이다.
겨울바다 같지 않게 따뜻한 날이라 홀로, 둘이서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손에 커피 한 잔 들고 걷고 있는 중년의 여인 두 명, 굽은 허리와 다리로 의연히 바다를 향해 서 있는 노인 한 분이 바다를 압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