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을 한 지 어느 새 2년이 지났다. 퇴직을 하니 먼저 해방감이 밀려왔다. 초등학교 입학하고부터 50년 넘게 학교와 학교과 관련된 기관에서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일의 반복을 50년 이상 해 온 것이었다. 그 해방감이 제일 먼저 온 것이다.
그 다음은 '느리게 천천히'라는 일상이 왔다. 하고 싶은 일만 원하는 시간에 하면 되니 시간에 얽매여서 파닥거리면서 해야했던 일들이 강요되지 않은 일상이다. 비 오는 월요일 느긋하게 일어나 빗속을 바삐 움직이는 차들을 내려다보면, 아, 저 행렬 속에서 벗어났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낄 때도 있다. 아주 게으르게 빗소리를 듣는 호사를 누리거나, 보고싶었던 영화를 하루종일 보아도 해야할 숙제가 없다. 코로나로 인해 바깥활동에 제한이 있으니 자연히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일상은 더 단순해졌다. 그래서 '심플라이프'라는 영화의 제목이 눈길을 더 끌었는가 보다.
이 영화는 천녀유혼, 황비홍 등을 제작한 홍콩의 유명한 프로듀스 로저 리의 실제경험을 2011년 쉬안화감독이 만든 영화이다. 실화라는 것은 보는 이에게, 픽션보다 더 가깝게 다가오는 면이 있다. 그리고 비록 홍콩이라는 지리적 배경은 다를지언정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디에 갖다두어도 어색하지 않아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가진다. 좋은 영화는 영화를 보고난 뒤에 자꾸 생각하게 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하던데 그렇다면 이 영화는 분명 좋은 영화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 입양된 아타오, 양부는 일제 침략기에 살해되었고, 능력 없는 양모는 그녀를 양씨가문으로 보냈다. 아타오는 그곳에서 60년간 식모로 살았다."
영화의 첫 장면은 이 자막으로 시작된다. 한 사람의 일생을 이 두 문장으로 가름한 것이다. 누군가의 일생이든 곁가지를 다 처내버리면 이렇게 두세 문장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태어나, 살다가, 죽었다. 그게 삶이다.
식모로 살던 아타오는 양씨가문이 미국으로 이민을 간 후 일 때문에 홍콩에 남은 영화 제작자 로저와 함께 산다. 집을 자주 비우는 그를 기다리는 것이 아타오의 일이다. 그러다가 그가 먹고 싶다고 했던 소혀를 삶다가 그녀는 중풍으로 쓰러진다. 쓰러진 그녀를 발견한 로저가 그녀를 병원에 입원시킨다. 몸의 한쪽이 마비되어 불편한 그녀는 로저에게 짐이 될까봐 요양병원에 입원하겠다고 한다. 로저가 병원비를 대겠다고 해도 자신도 돈이 있다고 거절을 한다. 좀더 나은 병원을 구하려고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로저는 친구가 운영하는 병원을 알게 되어 그녀를 입원시킨다. 독방을 배정받았지만 커텐으로 겨우 가려진 그곳에 개인의 사생활은 보장되지 않는다. 병원 또한 다양한 군상이 모여사는 곳이라 적응기간이 필요하다. 신참자에 대한 기존 고참들의 견제와 탐색이 이어진다. 그러다가 갈등이 발생하고, 갈등이 해소되면서 신참자는 서서히 집단 속으로 스며들게 된다. 여기도 마찬가지다.
아타오가 처음에 조금 나아져서 로저와 함께 그의 영화 시사회가 가는 장면이 그녀 인생에서 가장 빛이 나 보였다. 그런 행복한 때도 있었지만 노인의 여생이란 나아지는 것보다 나빠지는 것이 정석일 뿐이다. 아타오가 떠난 뒤 로저는 소혀를 삶아 놓고 자신을 기다리던 아타오를 떠올리면서 홀로 집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아타오의 노년은 로저가 있어 외롭지 않았고, 아타오가 있어 로저 또한 사람 사이의 정을 깨달아간다. 로저의 삶 속에 아타오의 삶이 언제나 녹아 있었기에, 그들의 관계는 혈연 이상으로 끈끈할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내 어머니께서 요양병원에 계시던 풍경이 고대로 오버랩되었다. 처음에 조금이라도 나은 병원을 찾을 양으로 몇 군데 병원을 찾아보았던 일, 막상 입원하고 난 뒤 적응하는 과정에서 이리저리 방을 옮기던 일이 생각났다. 내 어머니도 아타오처럼 내게 짐이 되고 싶지 않으셨기에 병원으로 가셨고, 병원에서 돌아가셨다.
내 어머니도 처음엔 주말에 외출하여 같이 목욕을 가고, 미장원에 가서 퍼머를 하고, 점심을 먹던, 비교적 평화로웠던 한때가 있었지만 넘어져 팔을 다치신 이후로는 그 마저도 어렵게 되어 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침대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시간이 이어졌다. 걸어서 들어가셨는데 걷지 못하게 되었고, 한쪽 귀로는 들으셨는데 나중에는 거의 듣지 못하셨고, 말은 잘 하셨는데 결국은 말도 거의 하지 못하시다가 가셨다. 죽음은 삶이 우리에게 준 모든 것을 거두어간 뒤에야 비로소 오는 축복 같은 것인지...
"부자는 아니지만 크게 아쉬울 것 없는 집의 장녀로 태어나 어릴 때 큰 꿈을 가지고 아버지가 일본에 사는 삼촌집으로 공부하러 보냈으나 집이 그리워 돌아온 후 심가집 독자에게 시집와 큰 아들은 낳다가 잃고,큰딸 낳은 후 전쟁 중에 친정아버지를 잃었고, 아들 하나와 딸 둘을 더 낳았다. 막내 낳은 후 남편을 잃고 홀로 그 자식들 키우느라 평생을 보냈다."
이게 내가 아는 내 어머니의 삶이다. 다른 것들은 행간에 깊이 묻혀 있다. 그 행간이 아마도 우리네 삶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