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중 제일 한가한 시간이 아침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한 잔의 커피를 마시는 때이다.
정수기에서 제일 적당한 물을 받아 주전자에 붓고 불에 올리면 물은 열기에 답하듯 가르릉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가장 맛있을 듯한 원두 두 스푼을 떠서 30년도 더 지난 시간 동안 함께 했던 수동 글라인더에 넣고 돌린다. 오래 쓰다보니 군데군데 칠이 벗겨지기도 했지만 커피가 갈리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천천히 갈다보면 향이 올라온다.
그 사이에 물이 끓기 시작하여 수증기가 번진다.
필터를 얹고 그 위에 갈린 원두를 붓는다. 분홍빛이 도는 목이 기다란 동주전자에 물을 옮겨 담아 두 바퀴 정도 돌려서 원두를 불리는 시간을 갖는다. 오늘은 어떤 잔에 커피를 먹어볼까 생각해 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계절에 따라서 날씨에 따라서 마음을 끄는 잔이 다르다. 봄가을엔 묵직한 잔보다는 바람처럼 가벼운 잔을 더 자주 찾게 된다.
오랜만에 엄마가 좋아하셨던 찻잔을 꺼내 보았다. 엄마는 그 잔에 커피를 타서 마시면 제일 맛이 좋다고 늘 말씀하셨다. 자주 써서 그런지 잔 테두리에 벗겨진 부분이 군데군데 보인다. 두 개였는데 하나는 받침이 깨져서 없어져 버렸다. 들어보니 가벼워서 부담이 없다. 찻잔에 그려진 꽃그림도 다시 보니 처음 본 듯 눈길을 끈다. 벚꽃처럼 보이는데 꽃 주위에 그려진 열매를 보니 또 딸기처럼 보인다. 베리류인가?
그리움을 덜어서 이 한 잔에 담아본다.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사라진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아서 더 그리워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