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속의 봄을 찾아서 운남성 핵심일주 5-호도협, 차마고도 트래킹
2024. 1. 14. 일. 맑음
6시 반 조식, 8시 반 출발이라 여유가 있어 남문으로 나가 인적 드문 여강고성을 보았다. 벌써 문을 연 가게도 있고 김이 올라오고 있는 음식점도 보인다. 여행지의 속살 같은 분위기를 느끼려면 이런 시간이 좋다. 온전히 그 공간을 여행객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이처럼 어슬렁거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호텔에서 2시간 반을 이동해서 호도협을 조망할 수 있는 상호도협으로 가는 길 내내 금사강이 따라온다. 금사강(金沙江, Jinsha River)은 중국 서남부를 대표하는 큰 강으로, 양쯔강(장강)의 상류에 해당한다. “황금빛 모래의 강”이라는 뜻으로 고대에는 금 채취가 이루어져 ‘금사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중국 칭하이성(靑海省) 바옌카라산맥 인근에서 발원하여 칭하이성 → 티베트 자치구 일부 → 윈난성(운남성) → 쓰촨성(사천성)을 지난다. 쓰촨성 이빈(宜宾)에서 민강과 합류한 뒤부터 ‘장강(양쯔강)’이라 불린다. 전체 길이 약 2,300km로 협곡이 깊고 유속이 빠른 산악 하천으로 낙차가 커서 중국 최대 수력발전 지대 중 하나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호도협(虎跳峡) 이 금사강 중류에 있다.



중간에 작고 소박한 휴게소에 들러 나가보니 날이 차갑다. 상호도협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참을 내려가니 협곡이 나온다. 호도협(虎跳峡, Hǔtiào Xiá)은 금사강이 옥룡설산(玉龙雪山)과 하바설산(哈巴雪山) 사이를 가르며 흐르는 구간의 협곡이다. “호랑이가 뛰어넘은 협곡”라는 뜻으로 협곡의 가장 좁은 곳의 폭이 약 30m 내외로, 전설에 따르면 호랑이가 강 위의 바위를 딛고 건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전체 길이는 약 16km, 낙차 약 3,900m로 미국 그랜드캐니언, 페루 콜카 협곡과 함께 세계 3대 협곡 중 하나로 꼽힌다.



호도협은 보통 상호도협, 중호도협, 하호도협으로 나누는데 이중 상호도협이 호랑이 점프바위가 있는 곳으로 전망대와 계단 등 안전시설 잘 갖춰져 있다. 중호도협은 절벽 길을 따라 걷는 하이 트레일(High Trail)코스로 경치가 가장 뛰어나다고 한다. 하호도협은 아직 개발이 접근이 가장 어렵지만 원시적인 자연미가 남아 있다고 한다.
호랑이가 뛰어 넘었다고 하더니 정작 가서 보니 물길이 넓고 거세서 역시 중국식 과장법인 듯하였다. 하얀 포말을 날리면서 흘러내리는 거센 물줄기를 보니 그 위를 날아서 건너는 호랑이의 기세가 느껴질 정도였다. 자연 앞에서 인간의 왜소함에 절로 겸손해지는 풍경이었다.





상호도협을 나와 미니밴에 나누어 타고 차마고도 중도객잔으로 이동하였다. 버스가 갈 수 없기에 큰 가방은 버스에 두고 배낭에 최소한의 짐을 꾸렸다. 이 배낭도 먼저 숙소인 차마객잔으로 보내고 우리는 중도객잔을 들른 다음 트레킹으로 차마객잔까지 가는 것이 오늘의 일정이다.





중도객잔 가는 길은 그래도 가드레일이 설치되어 덜 위험해 보인다. 하지만 오른편으로 까마득한 절벽, 그 너머 험한 돌산은 보고 있으니 그 길을 차를 타고 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아차 하면 굴러떨어질 듯한 높고 구불거리는 길이다.
중도객잔은 차마고도를 오가던 상인과 마방(馬幫)이 머물던 ‘중간 기착 여관’이라고 할 수 있다. 차마고도는 당나라 시대부터 중국 윈난·쓰촨 → 티베트 → 네팔·인도까지 이어진 교역로로 차(茶) ↔ 말(馬)을 교환했다. 이 길은 고산·협곡·험로가 많아 하루에 장거리 이동이 어려워 중간중간에 반드시 쉬어야 했고, 그 역할을 한 곳이 바로 중도객잔이다. 말과 사람이 숨을 고르고 거래 정보를 교환하던 생존의 공간인 셈이다. 목조 혹은 흙벽 구조로 중앙에 큰 마당(天井)은 말을 매어두고 짐을 내리는 공간으로 사용하였고 2층이 숙소로 되어 있다.
옥룡설산이 손에 잡힐 듯 보이는 곳에 자리한 중도객잔에서 점심을 현지식으로 먹었다. 향이 덜해서 먹을 만하였다. 가이드가 준비해온 김과 진미채가 한몫하였다. 점심을 먹고 햇살을 맞으며 앉아서 바라보는 차마고도의 산들은 눈은 없지만 세월을 견딘 골격만은 차마고도를 오갔던 마방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를 떠올리게 하였다.







점심을 먹고 관음폭포까지 왕복 4키로 트레킹을 하였다. 차마고도의 관음폭포(观音瀑布)는 특정한 곳을 가리키기보다, 차마고도 길에서 ‘관음 신앙’과 연결되어 불려 온 폭포·폭포군을 통칭하는 경우가 많다. 폭포는 험준한 산길을 오르내리던 마방이 지나던 길목 근처에 있다. ‘관음’이라는 이름은 폭포의 물줄기나 바위 형상이 관음보살이 서 있거나 흰 옷을 두른 모습을 닮았다고 여겨져 마방과 순례자들이 말과 사람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던 장소이다.







숱한 발걸음이 오고가며 만들어낸 천 년 넘은 옛길을 천천히 걷는다. 돌산의 낭떠리지 위에 만들어진 돌길이다. 그래도 서로 교차할 정도의 폭은 되어서 가급적 안전하게 안쪽으로 붙으면서 걸어갔다. 가다가 양이나 염소를 만나면 낭떠러지와 반대편으로 붙어서 걸으라고 가이드가 당부를 한다.
크게 오르막은 아니고 비교적 평탄한 길을 30분 정도 가니 저 멀리 관음보살의 하얀 치맛자락 같은 물줄기가 여러 갈래로 내려오고 있는 폭포가 보인다. 폭포 가까이 가니 봄꽃인 설앵초가 피어 있다. 물은 차갑고 맑다. 염소 한 마리가 지나가는 풍경이 고대에서 튀어나온 것 같다. 절벽에 복류되어 떨어지는 폭포를 보고는 중도객잔으로 되돌아왔다.






중도객잔에서 폭포와 반대편에 있는 오늘의 숙소인 차마객잔으로 이동하였다. 차마객잔으로 가는 길 왼편에는 옥룡설산이 계속 따라온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물빛은 하얗기도 하고 파랗기도 하면서 산 줄기를 감싸고 있다. 거대한 바위산 옆으로 까마득한 낭떠러지를 따라서 이어진 잔도를 걷는 경험은 낯설다. 우리나라 산에서 느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유럽풍경이 동화 속 이야기 같다면 중국 풍경은 신화 속 이야기 같다.









1시간 넘게 따가운 햇살을 받으면서 걷다 보니 목이 말라 갈증이 났는데 산 속에서 오이 파는 할머니를 만나서 오이를 한 개에 10위안을 주고 샀다. 두 개를 샀는데 50위안 지폐를 주니 잔돈이 없다고 한다. 가진 동전을 다 꺼내어 보이니 그중에서 18위안을 찾아간다. 산속의 오이 파는 할머니도 QR코드로 계산하는 나라가 중국이다.
드디어 숙소인 차마객잔에 도착했다. 오늘이 이번 여정 중 가장 많이 걸은 하루인 셈이다. 방은 마루 침상인데 다행히 온돌매트가 깔려 있다. 방에서 내다보면 창으로 설산이 가까이 보인다. 벽이 얇아서 옆방, 위층 소리가 다 들릴 정도였다.

저녁은 오골계탕이 나왔는데 그 오묘한 색깔이 식욕을 물리치는 바람에 함께 나온 현지식 반찬으로 대충 저녁을 때웠다.

식사 후 시간이 넉넉했지만 밖은 바람이 불고 춥다. 아쉬운 마음에 옥상으로 올라가 보니 서산에 초승달이 떴다.



삼각대가 있으면 별사진을 찍을 수 있을 텐데 큰 짐가방 안에 들어 있어 포기할 수밖에 없다. 쏟아지는 별들을 눈에, 가슴에, 기억에 가득 담아보았다. 얼굴만 대충 씻고, 트래킹으로 묻은 먼지를 털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 수밖에 없었다. 이불 속이 따뜻해서 나올 엄두가 나지 않았다. 9시경에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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