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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과 가르침

삶을 바꾼 만남

by 뭇새 2012. 5. 31.

 

삶을 바꾼 만남,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 정민 지음, 문학동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사람과 만난다. 피로 맺어진 부모형제와의 만남, 사회적 관계의 시작인 친구와의 만남, 가르침을 받는 스승과의 만남...만남을 통하여 우리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어느 순간, 어느 곳에서 누구와 더불어 살았는지, 또는 살 수밖에 없었는지에 따라서 우리 삶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동아일보 ‘나를 있게 한 그 사람’이라는 코너에 실린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의 글에는 ‘父子知己, ’兄弟知己‘라는 단어가 나온다. 박이사장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사랑방에서 유교경전이나 한학에 대한 대화를 나누셨고, 할아버지과 돌아가신 뒤에는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또 대화를 나누셨는데 자신은 그 모습을 보면서 성장하였다는 것이다. ’부자지기, 형제지기‘가 될 수 있는 집안은 어떤 집안일지 짐작할 수 있다. ’삶을 바꾼 만남,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을 읽고 몇 자라도 기록을 남기고자 마음을 먹었을 때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의 이 글을 읽었다. 이 또한 인연이 아닌가. ’나를 있게 한 그 사람‘이나 ’삶을 바꾼 만남‘이나 결국 동일한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정민 교수의 ‘삶을 바꾼 만남’은 다산 정약용과 그의 제자 황상의 삶을 그들이 남긴 시문을 통하여 재구성하여 들려주고 있다. 591쪽의 제법 묵직한 이 책을 그리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읽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소설가적 자질이 풍부한 저자의 스토리텔링 덕분이었을 것이다. 저자는 시 한 편과 문집의 글귀 한 자락을 가지고 그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우리 앞에 생생한 스토리를 풀어 놓는다.

황상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내가 알게 된 것은 정민 교수의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에서이다.  다산이 유배지인 강진에서 가르친 제자 황상에게  ‘삼근계’를 주었다. 삼근계란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 뜻으로 이 내용이 황상의 문집에 전해진다. 저자 정민교수도 삼근계라는 짧은 문장 때문에 황상이라는 인물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후 저자는 황상의 ’치원유고‘을 찾아서 읽었다고 한다. 그후  황상의 자취를 추적하여 자료를 모아 이 책을 엮었다.

다산이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18년, 그 사이 그가 길러낸 제자들이 많았다. 그중 다산이 가장 아낀 제자가 황상이었다. 다산이 해배되어 마재로 올라간 이후 10년 동안 황상을 스승을 뵙지 못하다가 다시 찾아간 그 만남 후 다산은 세상을 떠났다. 다산 사후 다산의 아들인 정학연와 다시 정리를 나누며 마침내 정황계- 정씨와 황씨 두 집안의 부자와 자손의 성명과 자호, 나이 등을 차례로 적고 돈독한 의리를 서술하여 대대로 우의를 이어갈 수 있도록 증서-를 만들었다.

시골아전의 아들로 태어나 유배온 대학자와 사제의 정을 맺어 평생 스승의 가르침대로 살다간 그의 행적은 그가 남긴 유고집과 그가 보낸 편지글 등으로 방대하게 남아 있다. 저자는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다산의 삶과 황상의 삶을 자세하게 재구성하여 서술하고 있으며 그러한 서술의 바탕이 되는 시들을 인용하고 있다.

 

다산이 황상에게 삼근계를 내리는 장면을 황상의 임술기에 인용된 부분은 다음과 같다.


-내가 산석에게 문사 공부할 것을 권했다. 산석은 머뭇머뭇하더니 부끄러운 빛 으로 사양하며 말했다. ‘제게 세 가지 병통이 있습니다. 첫째는 둔한 것이요, 둘째는 막힌 것이며, 셋째는 답답한 것입니다.’ 내가 말했다. ‘배우는 사람에게 큰 병통이 세 가지 있는데 네게는 그것이 없구나. 첫째 외우는 데 민첩하면 그 폐단이 소홀한 데 있다. 둘째, 글짓기에 날래면 그 폐단이 들뜨는 데 있지. 셋째 깨달음이 재빠르면 그 폐단은 거친 데 있다. 대저 둔한데도 들이파는 사람은 그 구멍이 넓어진다. 막혔다가 터지면 그 흐름이 성대해지지. 답답한데도 연마하는 사람은 그 빛이 반짝반짝 빛나게 된다. 뜷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부지런히 해야 한다. 틔우는 것은 어찌하나? 부지런히 해야 한다. 연마하는 것은 어떻게 할까? 부지런히 해야 한다. 네가 어떻게 부지런히 해야할까? 마음을 확고하게 다잡아야 한다. ’ 37쪽, 황상의 임술기에서-

 

 

이 글에서 산석은 황상의 아명이며, '나'는 다산을 지칭하고 있다. 이 글을 보면 황상이 어떤 사람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다산을 만났던 10대에 그는 벌써 스스로를 알았다. 스스로에게 3가지 병통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은 그가 이미 비범하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에 대한 다산의 가르침 또한 대단하다. 배우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민첩함이나, 날램이나 재빠름이 아니라 답답할 정도로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이다. 타고난 재능보다도 중요한 것은 계속 나아가는 것, 포기하지 않는 것, 시작해 보는 것이라는 것은 살아보면 더 절실하게 다가오는 깨달음이지 않은가.  ‘빨리 빨리’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가르침이다.

스승은 그 가르침을 10대의 제자에게 주었다. 그리고 그 제자는 그 가르침을 83세에 죽을 때까지 지켰다. 우직하게 나아간 그의 부지런함은 결국 그의 만년에 빛을 보아 다산 사후 추사, 권돈인 등과도 교유하게 된다. 그리고 또 시간의 깊은 우물 속에서도 썩지 않고 살아 남아 정민교수의 두레박에 실려 우리 앞에 그 맑은 기운을 전해주게 된다.

스승이 그에게 전해준 삶의 가치를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또 부지런히 살아낸 그는 결국 반짝반짝 빛이 나 시간의 더께를 뚫고 싹을 틔운 것이다.

 


밑줄 그은 부분들

-공부는 곤궁한 사람이 하는 법이다. 아비가 한나라 때 마융과 정현 같은 대학자의 주장을 검토해보니 도처에 오류투성이였다. 그들은 공부하랴, 술 마시랴, 마음이 나뉘어 이 아비처럼 전일하게 학문에 몰두할 형편이 못 되었다. 그러니 그렇게 오류가 많을 것이다. 너희도 명심해라. 공부는 너희 같은 폐족이 하는 것이다. 공부만 해야 한다. 목숨 걸고 해야 한다. 30쪽, 아들에게 보낸 다산의 편지글 중에서-


-사의재는 내가 강진에 귀양 와서 사는 집이다. 생각은 담백해야 한다. 담백하지 않으면 서둘러 이를 맑게 해야 한다. 외모는 장중해야 한다. 장중하지 않으면 빨리 단속해야 한다. 말은 과묵해야 한다. 과묵하지 않으면 바삐 멈춰야 한다. 동작은 무거워야 한다. 무겁지 않거든 재빨리 더디게 해야 한다. 이에 그 방에 이름을 붙여 사의재라 하였다. 마땅하(宜)는 것은 의롭다는 뜻이다. 의로움으로 통제한다는 의미다. 나이가 들어감을 생각하다보니 뜻과 학업이 무너진 것이 슬퍼서 스스로 반성하기 바란 것이다. 이때는 가경8년(순조3, 1803) 겨울11월 신축일 초열흘, 동짓날이니, 실로 갑자년이 사작하는 날이다. 53쪽


-다산은 어린이 학습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식을 통해 문심혜두(文心慧竇)를 여는 일이라고 보았다. ...‘문심’은 글자 속에 깃든 뜻과 정신이고, ‘혜두’는 ‘슬기구멍’이다. 문심을 알고 혜두가 열려야 공부머리가 깬다. 머리가 깨지 않으면 백날 해도 헛공부다. 55쪽


-언제 무슨 일이 있어도 현재 머무는 공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다산의 오랜 버릇이었다. 그는 얼마나 더 머물지도 모를 이학래의 사랑채 바깥 채마밭에 대나무를 옮겨 심었다. 297쪽


-다산은 조금 들뜬 마음으로 ‘다산팔경사’ 8수를 지었다. 다산은 이곳의 팔경으로 불장소도(拂墻小桃) 즉 담장가에 하늘대는 복사꽃가지, 박렴비서(撲簾飛絮) 주렴을 치며 날리는 버들솜, 난일문치(暖日聞雉) 따스한 봄날 들려오는 꿩 울음소리, 세우사어(細雨飼魚) 보슬비 속에 물고기 먹이 주기, 풍전금석(楓纏錦石) 비단바위 위로 뿌리를 감은 단풍나무, 국조방지(菊照芳池) 연못에 비치는 국화 그림자, 일오죽취(一塢竹翠) 언덕바지의 푸른대숲, 만학송도(萬壑松濤) 온 골짝에 울리는 솔마발 파도소리 등을 꼽았다. 이 여덟 가지는 처음 다산이 이곳을 들렀을 때 본 풍경이었다. 30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