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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적 시선으로

해운대 모래 축제

by 뭇새 2009. 6. 1.

연하리 소나무, 해운대 모래 축제

 

토요일, 일출에 맞추어 해운대 모레 축제를 갈 생각을 잠시 했지만 일어나니 해는 이미 떠 있었다. 그래도 작정한 마음이라 집을 나섰다.

연하리에 들렀다. 언젠가 보았던 닻은 그대로 햇살과 소금기 속에 놓여 있다. 바람에 파래와 다시마들이 많이 밀려와 있다. 하얀 모자를 쓴 할머니 한 분이 갈고리로 그것들을 긁어 모으는 일을 하고 있다. 갯내음이 강하다.

 

 

 

연하리 소나무. 바다를 향한 비탈진 밭 가에 서 있는 굽은 소나무다. 그 소나무를 배경으로 동해바다가 펼쳐져 있다. 사진을 찍고 있으니 파래와 다시마를 담은 수레를 끌고 가던 할머니가 이렇게 말하면서 지나간다.

“밭 주인이 그 소나무를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고 해도 안 판다 아이가.”

연하리 소나무는 그곳에 있어야만 연하리 소나무이다. 연하리 소나무가 빛나는 것은 그가 그곳에, 동해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소금바람을 맞고 있기 때문이지 않은가.

 

 

연하리 소나무

 

달맞이길로 해서 미포로 들어선다. 미포 들미에 ‘문탠로드 주차장’이라는 표지판을 보았다. 문탠로드, 달맞이길을 어느 주체성도 없고, 감성도 없는 집단들이 만들어 붙인 이름이다. 아무리 언어가 시간과 공간 속에서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문탠로드라는 말은 참으로 헛웃음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미포로 내려가는 길에 접어들자 멀리 오륙도가 보인다. 2주 전에 중리에서 태종대로 넘어가는 산책길에서 만난 오륙도가 또 다른 장소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미포로 내려가는 길목, 중간에 열찻길이 있다. 동해안쪽으로 가는 기차가 다니는데 기찻길 하면 언제나 생각나는 키 큰 해바라기나 접시꽃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기찻길이 있어서 그 길에는 걸린 신호등이 많다. 언젠가 이 길을 세피아톤으로 찍은 한 장의 사진이 기억에 남아 있다. 평범한 거리 풍경이었는데 그 풍경이 남아 있는 것은 그 한 장의 사진 속에 들어 있는 많은 이야기들 때문이었을까?

 

 

 

토요일이어서인지, 해운대이어서인지 아침부터 사람들이 많다. 바닷가를 따라서 나무로 만든 2단의 인도를 만들어 두어서 해변은 걷기는 편하게 되어 있다. 여름바닷가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커다란 햇빛가리개가 어느 새 등장했다. 해수욕장을 개장하려면 1달은 있어야 될 듯한데 모래사장에 햇빛가리개가 붉은 여름을 펼쳐 놓았다.

 

 

 

모래축제를 알리는 풍선이 떠 있고, 한 쪽에는 비치발리볼을 하고 있고 그 옆으로는 삼포걷기대회 개회식이 열리고 있다. 자유로운 풍경들이다.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는 풍경은 평화롭다. 달리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걷는 사람, 앉아서 이야기하는 사람, 모래를 쌓고 있는 사람...

 

 

 

 

 

 

 

사진 속에 사람을 넣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나의 경우 사진 속에 사람을 넣기 시작한 것은 사진 속에 의도를 넣기 시작하면서부터가 아닌가 싶다. 애초에 내 사진에는 꽃만 있거나 풍경만 있거나, 어쩔 수 없는 경우 사람이 불가피하게 들어간 경우말고는 사람을 피사체로 찍은 사진을 찍은 적이 별로 없다. 기록이나 기념사진을 제외하고는.

그래서인지 사람을 넣은 나의 사진은 찍어 놓고보면 참으로 평범하다. 이야기만 남고 이미지는 사라진 느낌이다. 사진은 결국 이야기를 이미지로 만들어야 하는 것인데 주객이 전도되어 버리니 느낌도 없는 밋밋한 사진이 되어 버리고 만다. 그러고 보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는 것이 필요하다. 며칠 전 읽은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처음엔 무조건 의도나 상징이나 그런 것을 생각하지 말고 찍는 것이 중요하다. 의도가 너무 많으면 이미지는 그 속에 파묻혀 버린다.

  

삼포 걷기 행사장을 지나니 모래조각들이 누워 있다. 조각들은 삼차원의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데 이것을 찍어 놓고보면 공간은 사라지고 평면만 남는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다. 모래로 조각을 만들어 놓은 예술가는 자신의 예술작품의 영원성을 어떻게 보장받는 것인가? 그 조각을 본 사람들의 마음 속에 새겨놓는 이미지로? 아니면 이렇게 사진 속에서?...

 

 

 

인물조각도 있고, 동물조각도 보인다. 작품의 의도가 선명한 것도 보이고, 의도가 없는 것도 보이고, 의도가 불분명한 것도 보인다. 작품 자체의 완성도에 대해서는 내가 구체적인 평을 하기가 어려웠다. 단지 그 작품들을 보는 내 마음의 울림에는 차이가 있었다.

 

 

 

 

 

모래조각들을 중심으로 구도를 잡다보니 바다, 오륙도, 조선비치, 달맞이고개들이 배경으로 잡힌다. 예술작품의 이면은 어떤가 모래조각의 뒤로 돌아가 본다. 모래조각의 뒤는 앞과는 달리 그저 모래이다. 모래의 결을 따라서 달맞이고개의 건물들이 잡힌다. 모래는 곧 부서질 듯이 위태위태하고, 건물들은 견고하다. 그 둘을 한꺼번에 잡고보니 주제가 지나치게 부각된 것은 아닌가.  직설적인 주제 표현, 독자나 관객의 입장에서는 재미 없는 일이다.

 

혼자 사진을 찍는 시간은 생각이 많은 시간이다. 내 눈길과 마음이 끄는 곳으로 기웃거리다보면 내면에서 쑥 올라오는 그 무엇인가가 움틀 수 있는 시간이다. 그저 생각 없이 걷는 것도 때로 좋고, 모든 것에 집중하는 이런 시간도 때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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